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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미국

 

*편집자주

해당 기사는 내셔널리뷰의 노아 로스먼이 작성한 기사를 번역한 것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총격 사건과 더불어 폭력에 점점 더 익숙해지는 미국 내 정치적 진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는 무슨 글을 쓰던 간에 신중하지 못한 행동인 것처럼 느껴진다. 담론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만한 것을 생각해내기 어렵다. 가장 신중한 방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보를 수집하고, 열정이 식었을 때, 비로소 가치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을 택한다는 것은 무분별한 열정에 의지하는 선동가와 정치적 파괴자들에게 환경을 양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중하지 않게 글을 쓰는 것은 정치적 환경에서 벌어지는 긴장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지만, 악당과 선동가들이 담론을 조종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 역시 무책임한 일이다.

 

정치적으로 우익진영에 속한 미국인들은 10년 가까이 정치적 폭력에 대한 그들의 성향에 대해 설교를 들으며 보냈고, 그들의 정당한 인식에 따르면, 폭력은 그들의 적에 의해 불균형적으로 가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러한 역동성에 대해 분개할 만한 이유가 있다.

 

이는 2016년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캘리포니아 코스타메사에서 열린 트럼프 선거 유세에서 폭행을 당하고 계란을 뒤집어 쓰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만 해도 사실이었다. 경찰은 같은 해 뉴멕시코에서 열린 트럼프 행사에서 돌과 물병을 던지던 군중에게 후추 스프레이와 연막탄을 발사했다.

 

시카고에서는 한 시위대가 트럼프 지지자들의 행사에 몰려와 "입 닥쳐라"라고 외쳤다. 두 명의 경찰이 부상을 입었고, 이후 수십명이 체포되었지만, 시위대는 트럼프 캠프가 행사를 연기하도록 압박하는 데 성공했다.

 

많은 보수주의자들과 공화당은 오래전부터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잔혹함을 정당화하는 폭력과 지적인 틀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고 결론지어왔다. 그들은 2017년 미국 의회 야구 경기 연습 도중, 좌익 언론을 맹신하는 괴한이 공화당 의원을 학살하려고 한 사건을 단지 이틀간의 이야기로 바꾸는 것을 보았다.

 

또한 그들은 저명한 공무원들과 주요 뉴스 매체들이 2020년에 모든 주요 미국 대도시에 불을 지른 폭도(*각주 : BLM 시위대들을 의미함)들을 위해 매우 애쓰는 모습들을 목격했다. 그들은 고귀한 정치적 원칙에 따라 불태우고, 도둑질하고, 모든 것을 파괴했다고 우리에게 말했고, 우리는 그들이 그 원칙을 존중하면서 추구하는 데 적용되는 방법을 항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지금, 트럼프 선거 유세에 참석한 무고한 시민이 트럼프의 머리를 겨냥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나는 이 모든 것에 분노하는 사람들을 비난하진 않지만, 오히려 절망에 빠질 뿐이다. 좌파들은 미국의 우파들에게 가해진 폭력을 '그들이 신중과 예의를 지키지 않은 결과'로 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파들은 자신들의 선동을 보지 못해 생긴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시킬 능력이 있다.

 

그들은 트럼프를 폭력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면책한다. 그는 참석자들을 두들겨 팬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발생하는 '법적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하고, 그의 팬들은 그의 행동을 반대로 바라본다. 그들은 언론에서 트럼프 비판자들을 표적으로 삼은, 실패한 우편 테러 캠페인으로 귀결된 선동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국회의사당 점거를 낳은 도발에 대한 그의 역할에 대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드라마에서 어느 쪽도 이 공포의 확대에 있어 자신의 역할을 용납할 수 없다. 어떤 짜증이나 모욕이 우리를 심연에 빠지게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폭력과 테러의 최근 에피소드는 마지막 사건에 대한 보복일 뿐이다.

 

토요일과 같은 사건은 현대 정치적 수사로부터 무모한 상태에 대해 몇 시간의 반성적 성찰을 불러오지만, 그 순간들이 낳은 결의는 미국 정치적 스펙트럼 양쪽이 점점 더 폭력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관찰하는, 거짓된 도덕성 동등성을 비난하는 당파적 비난의 바다로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양심적인 사람은 그들의 우려를 억누르고, 우리는 나른하게 재앙을 향해 걸어가기 전처럼 나아간다.

 

도널드 트럼프 암살 시도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가 정신병적 행위를 시도할 정도로 심하게 혼란스러워한 것에 대해 집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중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정당화 될 수 없다. 양당 모두는 이 사악한 행위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여겼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2016년 트럼프 지지자들을 향한 수많은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의회 야구 총격사건과 2020년 수차례 벌어진 폭동도, 시위대를 공격한 트럼프 팬들도, 국회의사당 점거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정치의 열정에 유혹받는 사람들은 전직 대통령 암살 미수에 고무된다. 그의 반대편은 트럼프가 폭력을 미국 정치 지형의 특징으로 만든 유일한 선동가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싶어한다. 나는 낙담할 따름이다. 미국은 알 수 없는 대재앙으로부터 수 센티미터나 떨어져 있었지만, 우리를 이 슬픈 장소로 이끈 시민협약의 전이성 암과 씨름할 저명한 시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를 질책하고, 소셜 미디어에서나 통용되는 공허한 허세로 대중들을 폭격하고, 우리 편이 저지른 최악의 행위를 변명하고, 선동에 대해서는 다른 편을 비난할 것이다. 이것은 재앙으로 가는 길이지만, 아무도 암초에서 벗어나 항해하려는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의 행운이 다할 것이다.

 

이제, 알았는가? 내가 아무 말도 쓰지 말았어야 했다는 사실을 앞에서 이미 이야기 했지 않나.

 

데일리인사이트 정성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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