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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집으로 돌아와 '전업여친'을 택하는 현대 사회의 여성들

경제적 허무주의에 빠져버린 젊은 여성들의 증가

그웬 더 밀크메이드(Gwen The Milkmaid)는 유명한 틱톡 인플루언서다. 그녀는 자칭 '전통적 부인상'(傳統的婦人想)을 내비치며 틱톡,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초전통적인 성역할로 복귀와 남성 파트너에 대한 재정적 의존을 찬양하는 여성들 중 한명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성들이 노동시장으로 진출해 위풍당당한 커리어우먼이 되는 것을 동경했던 점을 생각한다면 이런 여성들의 등장은 매우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이들은 월스트리베츠와 크립토 브라더스의 거물급 트레이더들처럼, 경제 허무주의를 나타내는 인간상 중 하나이다. 즉, '걸보스'(Girl Boss) 페미니스트 판타지에 환멸을 느낀 젊은 여성들이 대출금을 상환하고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 남성들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들에게는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MZ세대들은 그동안 자라면서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도록 자랐으며, 실패는 그저 개인적 차원의 불행에 불과했다. 8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그들의 정체성은 공산주의 이후 정치적 공백에 의해 형성되었다. 즉 '미래가 게임보이 게임기와 자본주의는 절대 아닐 것이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닷컴 버블 시대의 투기 과잉, 그리고 이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경제 위기는 경제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켰다. 또한 베이비붐 세대가 누렸던 보건, 교육, 주택에 대한 공공 투자는 변동성과 위험으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좋은 직장과 좋은 집을 가질 수 있다는 꿈은 자연스럽게 취직, 내집마련 등에 대한 포기와 회의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일부 남성들이 집에 틀어박혀 대출금을 욜로라이프를 즐기는데 사용한다면, 일부 여성들은 상황이 더욱 안정적일 수 있다고 판단되는 50년대의 생활상으로 후퇴하길 선택했다. 오늘날 여성들은 직업이 없는 것처럼 육아를 하는 동시에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해야한다. 심지어 이전 세대가 누렸던 공공자원(저렴한 의료, 교육)이나 사회적 지원(이웃, 가족) 없이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웬과 같은 인플루언서들이 유행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전통적 부인상을 보여주는 인플루언서들은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거부했던 삶의 방식을 받아들였다. 소위 말해 '취집'(취업 대신 시집)을 하는 것이다. 물론 취집하기 위해서 실제로 '주부'나 '어머니'가 될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여성들은 집에서 계속 머무르는 여자친구, '전업여친'을 택하기 시작했다. 

 

주부들의 주된 임무는 집과 가족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업여친의 주된 임무는 젊고 매력적인 몸매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메인 프로젝트가 되는 것이고, 그녀의 일은 자기 자신을 상시 '최적화'시키는 것이다.

 

틱톡 인플루언서 켄들 케이(Kendel Kay)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케이는 하이키 엔터프라이시스 LLC(Highkey Enterprises LLC)의 CEO 루크 린츠(Luke Lintz)의 '전업여친'이다. 그녀는 50만명이 넘는 팔로워들에게 밋밋하고 작은 목소리로 "이것이 전업여친으로서 나의 일상이다"라고 말하는데, 그녀는 매일마다 사소한 집안일, 운동, 식단조절, 스킨케어 등의 일상을 영상으로 찍어 업로드하고 있다.

 

유튜버 쉐라 세븐(Shera Seven) 역시 비슷하다. 그녀는 구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냉소적인 조언을 남겼다.

"두 번째 데이트에서는 쇼핑을 하던가 선물을 받아내던가 돈을 많이 쓰는 식으로 '머니 데이트'를 하세요. 그가 빨리 지갑을 열게 만들면 만들수록 그는 당신에게 더 빨리 애착을 가지겠죠. 돈을 펑펑 쓰게 만들어요." 

-쉐라 세븐-

 

이런 전업여친과 그 이전 세대의 전업주부들의 차이는 명확하다. 먼저 이전 세대의 미국 내 전업주부의 남편이 가진 직업은 농부, 전기공, 목수와 같은 직업을 가졌지만, 현대 전업여친의 파트너는 전문직, 혹은 금융계열에서 수익성이 좋은 직업을 가진다. 또한 이전 세대의 전업주부는 세탁, 육아 등 실제 집안일에 참여하지만, 전업여친의 일은 거의 대부분 보여주기식에 가깝다. 

 

또한 집안의 천사라고 불리던 근대사회의 전업주부들은 완벽한 케이크를 구워 대접하는 등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지아 톨렌티노(Jia Tolentino)의 최적화된 전업여친은 교활한 족속에 가깝다. 그런 사람들은 틱톡에 영상을 올리는 #댓걸(#thatgirl, 평소 바라던 바로 '그 여자')이라는 여성 온라인 인플루언서로 케일 스무디를 갈아마시는 모습이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부 여성들은 케이 같은 전업여친의 존재를 당혹스럽게 생각하지만, 언허드의 레이첼 오드와이어(Rachel O'Dwyer)는 많은 여성들이 이들을 보면서 위안을 삼는다고 지적한다. 이어 그녀는 "내가 거짓말에 넘어갔다는 것은 이해했지만 그것을 생각하기는 싫다"고 말하며 "그것을 그저 느끼고 싶다"고 평했다. 이어 그녀는 케이의 말을 인용하며 "모든 것을 가진다는 것이 모든 것을 해낸다는 것을 의미할 때, 거의 아무것도 하기 싫게 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꿈꾸는 직업이 있냐고 물어보곤 했죠. 그러나 저는 노동을 꿈꾸진 않습니다. 저는 섹시한 전업주부로서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삶을 살고 싶어요. 그게 다에요"

-켄들 케이-

 

많은 사람들은 전통적 부인상과 현대의 전업여친을 비판하며 페미니즘을 수십년 전으로 되돌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웬 더 밀크메이드가 시사한 것과 달리, 50년대는 여성들의 황금기는 아니었다. 실제로 그 시기를 살아온 페미니스트 베티 프리던(Betty Friedan)의 말대로라면, 많은 주부들은 집에서 돌봄 노동과 주간 수입만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전통적 부인상이 재정적 의존과 학대를 로맨틱하게 미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물론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돈을 쓰도록 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경제인류학자 비비아나 젤리저(Viviana Zelizer)는 노동자계급의 여성들과 그 데이트 상대 사이의 복잡한 경제적 '대우' 문제에 대해 연구하는데 모든 책을 할애했다. 그녀는 술, 선물 등에 대한 비용은 사실상 성적 호의에 대한 사실상의 대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토록 오래된 서사가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된 것처럼 보일까? 이에 오드와이어는 "요즘 여성들의 할머니 세대와는 달리, 그 어떤 직업들보다 '집에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선택했을지도 모른다"고 답한다. 또한 그녀는 "어쩌면 #남자친구에게돈달라고부탁하기(#Askingmyboyfriendformoney)나 #소녀수학(#Girlmath, 소비를 저축이나 투자의 한 형태로 보는 여성들의 소비습관) 같은 트랜드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어찌되던 현재 전 세계의 청년들은 경력 상승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그저 포기하고 드러누운 채로 부를 과시하기를 택했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고된 일에서 벗어나 쉽고 차분한 삶을 추구하는 만큼, 전통적 부인상은 여성 온라인 컨텐츠의 긴 여정 중에서 가장 최근에 등장한 틈새시장일 뿐이다. 이는 그 자체로서 바쁜 일인 동시에 수익도 창출해낸다.

 

이에 대해 오드와이어는 그웬 더 밀크메이드와 켄들 케이의 사례를 예시로 들었다. 그웬 더 밀크메이드는 온리팬즈에서 성인 컨텐츠 제작자로 활동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또한 오드와이어의 말에 따르면, 켄들 케이가 그녀의 그린 주스 브랜드를 홍보하는 동시에 '걸보스'를 반대하는 모습에 속아넘어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결국 오드와이어는 "마치 재정적 허무주의에 대한 응답은 여전히 더 큰 허무주의인 것 같다"고 평가한다.

 

오드와이어는 "젊은 여성들이 집에 틀어박힌 것은 경제적인 불확실성에 직면해 더 차분한 무언가로 후퇴하고 일을 거부하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도 "집과 가족, 그리고 여성 자신의 몸은 도피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어 "우리는 후기자본주의가 우리 스스로에게 행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런 여성들의 삶과 몸에 끌릴 수는 있지만, 결국 우리에게 팔리는 것은 더 무의미한 자기관리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데일리인사이트 정성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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