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Black Lives Matter(BLM)는 2013년에 설립되어 미국을 의도적으로 변화시켰다. 소위 "인종차별 정의구현"(racial reckoning)을 촉발시켰다. BLM의 설립자인 알리시아 가르자, 파트리스 컬러스, 오팔 토메티(Alicia Garza, Patrisse Cullors, Opal Tometi)는 사회운동 베테랑이었고 가족, 자본주의, 대의 민주주의를 해체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트레이본 마틴 사건에서 조지 짐머맨이 무죄 판결을 받은 후, 가르자는 안타까워하는 메시지를 올렸고, 컬러스가 #BlackLivesMatter 해시태그를 만들었고, 이후 토메티가 제안한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BLM은 2014년 퍼거슨 시위 동안에 큰 관심을 얻었다. 2020년에는 조지 플로이드 살인사건 이후 흑인에 대한 정책을 미국이 체계적으로 인종차별적이고 억압적이라는 거짓된 관점으로 전세계적 관심을 모았다.
2020년 BLM은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운동이 되었다. 이 와중에 미국에서는 수백 건의 거리 폭동에 대응하여 기관들은 다양성, 형평성 및 포용 프로그램, 비판적 인종 이론, 성별 이론, ESG 정책을 채택했다. 이 운동의 근본적인 생각은 미국이 체계적인 점검이 필요하고 사람들은 인종 이론 교육자에 의해 다시 교육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들은 저항에 부딪혔다. 부모들은 항의했고, 글렌 영킨과 론 드샌티스와 같은 보수적인 정치인들은 각각 버지니아와 플로리다에서 선거에서 승리했다. 여러 주에서 대학 및 대학에서 다양성, 형평성 및 포함 프로그램을 제거하기 시작했으며, 인종차별 반대 훈련 사업은 쇠퇴하고 있다.
BLM의 확산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극좌파 그룹의 네트워크에 의해 추진되었다. 가르자, 컬러스, 토메티와 같은 청년들은 노동자 공동체 전략 센터와 통일과 해방 학교와 같은 단체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 훈련을 받았다. 이들은 ‘Left Roots’, ‘Left Forum’과 같은 네트워크 모임에 참석한다. BLM의 세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전국 가정 노동자 동맹(The National Domestic Workers Alliance)은 2007년 1회 미국 사회 포럼(U.S. Social Forum)에서 만들어졌는데, 가르자는 이 포럼에서 활동했다.
BLM의 부상 이후 2014년부터 2019년 사이 퍼거슨시의 살인은 10% 증가했고, 2013년 이후 BLM을 지지하는 민주당원들이 가진 국가적 자존심은 하락했다. 따라서 BLM의 영향은 “정의구현"이라기보다는 잘 조직된 “봉기”다.
데일리인사이트 이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