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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루이지 맨지오니: 도덕성에 관한 시험

 

*편집자주

해당 기사는 워싱턴프리베이컨의 매튜 콘티네티가 작성한 칼럼으로 최근 브라이언 톰슨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를 총격으로 살해한 루이지 맨지오니를 둘러싼 현재 미국의 여론들을 비판하고 있다.

 

최근 루이지 맨지오니가 브라이언 톰슨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것은 단순한 형사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의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도덕적 명확성에 관한 시험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너무나도 많은 미국인들이 이러한 시험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

 

가령 예를 들어, 매사추세츠 출신의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톰슨의 아내를 '미망인'으로 만들고, 두 아들로부터 아버지를 빼앗은 흉악한 암살 사건으로부터 정책적 교훈을 얻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워런은 허핑턴포스트에서 "폭력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람들을 몰아붙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 사건은 사람들을 너무 강하게 몰아붙이면 그들이 정부의 개혁 능력에 관한 믿음을 잃고, 의료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변화 능력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며,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위협이 될 방식으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한다는 경고이다.

 

경험적인 자존심, 기만성, 무능함의 삼박자를 갖춘 진보적인 특색을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갖춘 정치인은 없다. 워런의 이런 눈살 찌푸려지는 발언은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그녀는 서둘러 자신의 발언을 정정했다. "폭력은 결코 답이 아니다. 살인은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을 훨씬 더 분명히 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워런 혼자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하나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추태는 워런을 넘어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로 칸나 등의 민주당 의원부터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까지 확대되고 있다. 심지어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범죄 행위를 하나의 '교훈을 주는 순간'인 것처럼 세탁하고 있다.

 

이런 반기업적인 극좌세력들은 도덕을 반전시키는 것에는 도가 튼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치를 강자와 약자의 이분법으로 축소시키고, 약자로 지정된 사람의 행동을 저항 행위로 정당화한다. 이들은 브라이언 톰슨의 CEO 직책 때문에 그를 '강자'의 범주에 포함시켰고, 이 때문에 살인의 도덕적 중대성이 축소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런 비논리적인 논리로 인해 급진 좌파들은 거짓을 기반으로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대한 방어를 행사한 것도 10월 7일에 발생한 하마스의 테러와 동일시하고, 다니엘 페니가 지하철에서 노숙자를 제압한 것과 맨지오니가 계획 살인을 벌인 것을 동일시 한다. 그러나 이들의 세계관에서 톰슨, 이스라엘, 페니는 강자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들의 세계관에서 강자는 무조건 유죄로 추정된다. 단순히 그들의 지위 때문에 말이다.

 

그러나 스스로 억압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들의 불만은 위법행위, 혼란, 그리고 폭동을 정당화 한다. 좌파들은 그것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회가 그들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이유로 타락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워런이 말했듯이 그들이 '믿음을 잃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선다면 우리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정답은 '당연히' 할 수 있다. 종교, 전통, 그리고 사법체계는 우리 스스로가 도덕적 행위자라고 판단한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 그리고 우리는 더 높은 권능에 의해 심판받을 것이다. 

 

만일 도덕성을 버리고, 테러리즘을 합리화하는 순간, 우리는 허무주의와 자기파괴적 삶에 스스로를 개방하게 된다. 이것은 그간 모든 위대한 문학 작품에서만 다뤄지는 주제일 뿐 아니라, 쟈코뱅에서 알카에다까지 이르는 급진적인 정치가 보여준 일종의 교훈이다. 일부 미국인들이 건강 보험사에 대한 좌절감 하나로 이들과 같은 어두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하다.

 

따라서 루이지 맨지오니의 사례는 국가를 위협하는 또 다른 결핍을 강조한다. 도덕적 명확성이 부족해지면, 우리는 선과 악에 관해 무감각해진다. 그리고 이는 우리 도시와 대학가에서 범죄자를 체포하고 처벌하는 것을 방해한다. 심지어는 국제관계에서 아군과 적을 구분하지 못하게 한다. 그 결과 구타, 폭행, 폭동, 암살 시도와 같은 정치적 폭력이 증가하고 법치주의가 약화하게 된다.

 

이런 광기의 흐름은 정상화되어야 하고, 악에 맞서야 한다. 그러나 광기와 범죄를 옹호하고, 당파적 이익을 얻기 위해 도덕을 뒤집는 나태한 변증론자들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타락한 기관들의 산물일 뿐이다. 가족, 지역사회, 교회, 학교는 우리가 인격을 형성하고 옳고 그름을 배우는 곳이다. 맨지오니의 체포에 관해 사람들이 이러한 반응을 하는 것은 이런 기관들, 특히 고등교육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민주당의 모두가 이런 좌파들의 광기에 동참하며 윤리적 방향성을 파괴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맨지오니의 성역화는 깊은 혐오감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미국에 존재하는 모든 엘리자베스 워런들에게 "맨지오니는 영웅이 아니고, 이 이야기의 진짜 영웅은 맥도날드에서 그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알바생"이라고 말한 조쉬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가 그 예시다. 또한 존 페터먼 상원의원은 "그는 감옥에서 죽을 멍청이에 불과하다. 그를 축하하고 싶다면 마음껏 하시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영혼을 위한 싸움에서 샤피로와 페터먼이 아둔한 극좌세력들을 이기기를 바란다. 도덕적 명확성에 관한 시험은 단순히 평범한 시험이 아니다. 문제는 무겁고, 실패는 재앙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재시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데일리인사이트 정성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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