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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남성'은 언제쯤 구원 받을 수 있을까

스기타 슌스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

 

대한민국은 어느 나라보다 더욱 남녀갈등이 심각한 나라이며,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초저출산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 진영은 주로 여성 편향적인 담론을 주도해 나가고 있고, 보수 진영 역시 이러한 정책들에 편승하고 있다.

 

문제는 '소외되는 약자'들이다. 페미니즘이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이전 정치권은 노인·장애인·빈곤층 등에 대한 복지정책에 중심을 맞췄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수용하기 시작한 시점 이후로, 이들 사이에 '여성'이라는 존재가 추가되더니, 이제는 '여성 복지'가 다른 복지보다 우선시되는 주객전도적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다보니 경제적으로 빈곤하거나, 고립된 남성들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스기타 슌스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은 이러한 '약자 남성'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특히나 그는 고립된 남성이 폭력적인 성향을 분출하는 이른바 '인셀 계층'이 되거나 혹은 괴로움을 못 이겨 자살을 선택하는 현상에 대해 고찰하고, 그러한 선택이 아닌 '진정한 해방'으로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그들의 외로움


현재 전세계적으로 정체성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정체성 정치의 특징은 주로 정치적 소수자(라고 주장하는 개인 및 집단)가 자신이 어떻게 '다수로부터' 배제되고 차별받았는지 어필한다는 점이다. 스기타는 이러한 정치적 양상에 대해 설명하며, '약자 남성'이란 '다수(국민·시민)와 소수자 중 어느 쪽에도 포함될 수 없는 존재'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이분법적 정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고 이해하면 편리하다.

 

그의 저서에는 '유리 지하실'이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해당 용어는 여성의 '유리 천장'에 빗댄 말로, '남성이 약자가 되면 유리 바닥이 깨져 지하실로 추락해도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이는 미국 남성들의 현재 상황을 묘사하던 한 네티즌의 말을 인용한 것이지만, 사실 스기타의 조국인 일본과 우리 대한민국 역시 크게 다른 상황은 아닌 듯 하다. 사회에서 남성들의 '공동체'는 사라져가고 있으며, 패배자에게는 냉대와 조롱을 보내는 것이 현대 사회가 아니던가.

 

그러면서도 스기타는 "약자를 절대 우위에 두고 피해자 의식에 갖히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되려 그는 '약자'의 개념을 재정립함으로서, 스스로를 자각하고 사회의 경계선의 시각에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려고 한다고 설명한다. 즉, 기존 안티 페미니즘 진영의 반동적 성격(요컨데 '남성이 여성보다 더 희생하고 있으며, 피해를 받았다' 등의 생각으로 모든 여성을 적으로 돌리는 담론)을 경계하고, 소외되는 남성계층의 괴로움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스기타는 '약자 남성'들이 본받아야 할 존재로 '스미코구라시'를 언급한다. 스미코구라시는 리락쿠마, 마메고마 등으로 유명한 산엑스가 제작한 캐릭터로 무기력해 보이는 귀여운 외모 속에는 각자의 어려움과 슬픔이 담겨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사회의 구석에 기대어가며, 서로 의지해가는 공동체를 형성해 살아간다. 그는 약자 남성들에게도 이러한 빈틈에 기대어 안식을 얻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울분


최근 한국,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인셀이라는 용어가 떠오르고 있다. 이는 '인기 없는 남성'을 부르는 말이다. 책에서는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의 설명을 인용하며, 현대에 발생한 총기난사사건들과 대량학살사건이 이들과 연관되어있다고 주장한다. 베라르디는 이들의 행동이 '현대 자본주의을 향한 절망'이 이를 초래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책에서는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조커' 역시 언급한다. 조커의 주인공 아서 플렉은 현대 사회의 전형적인 '약자 남성'이다. 그는 초반에는 가족에게 인정받길 바라고, 이성과 연애도 하길 원하는 지극히 평범한 저소득층 남성이지만, 작품 후반부에는 결국 '악당'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에 스기타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 슬라보예 지젝의 어록을 인용한다. 지젝은 '조건없는 사랑'을 언급하며, 이에 대해 '테러리즘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폭발력을 잠재하고 있는 해방적 폭력'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스기타는 '남자 vs 여자', '시민 vs 소수자'의 오인사격이 아니라, 진정한 적에 그 울분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자신을 누군가와 대립하고 갈등하게 하는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괴로움을 호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한국 역시 자국 내 팽배한 천민자본주의적 발상이 점점 공동체를 사라지도록 만들고 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물질주의적인 생각에 고립되도록 만든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하지만, 남성에게는 그런 것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환경임이 현실이다. 2023년을 뜨겁게 달궜던 신림역 칼부림 사건부터 시작된 일련의 흉기난동은 이렇게 비틀어진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응당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아니었을까.

 


한국에서는 어떠할까


물론 해당 저서는 기존의 인문학계와 다르게 '약자 남성'에 대해 조명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저서에서 아쉬운 점은 몇 가지 존재한다. 

 

먼저 '약자 남성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지나치게 개인중심적이라는 점이다. 스기타는 '약자 남성'들을 향해 "자신의 약자성을 인정하고, 제대로 상처받을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어 "약자 남성들을 고립시키고, 남녀를 대립시키는 사회에 그 울분을 풀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과연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에 대해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과거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다뤄졌던 문제점이다.

 

두 번째로 한국에서는 해당 저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남성에게만 실시되던 징병제와 군 장병에 대한 존중 부재', '대중적으로 팽배한 남성혐오적 정서' 등 일본과는 다른 변수들이 상당부분 존재한다. 더군다나 온라인 상에서는 여성과 남성 간의 대립이 과열되다 못해, 이제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냉대하고 조롱하기 시작하는 시대가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기타의 담론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스기타의 저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안티 페미니즘을 넘어서, 상처받은 남성들이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 알려주기 때문이 아닐까. 단순히 페미니즘 진영과 싸우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서로 연대하고 이해해준다면, 남성의 권익이 침해당하는 사안에 대해 마땅히 투쟁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의 경우, 안티 페미니즘 진영의 담론은 '우리의 권리를 지켜달라'가 아니라, '우리만 탄압하지 말고 저쪽도 탄압하라'로 바뀐지가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후에 웃는 것은 스기타의 말대로 '정부'가 될지도 모른다. 마땅히 서로 공격할 것은 공격해야 하지만, 그러한 방향성에 '내가 규제받고 탄압받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면, 그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이 없다. 

 

그런고로 이 기사를 읽는 사람들이라면 해당 저서를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현대 사회에 만연한 정체성 정치로 인해 소외된 모든 계층에게 한 줄기의 빛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데일리인사이트 정성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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