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편집자주

해당 기사는 데일리와이어의 벤 샤피로가 '제 3차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에 대해 작성한 칼럼을 번역한 글이다. 

 

제 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역사적 맥락을 보아야 한다.

 

1962년 쿠바 미사일위기 당시, 소련은 핵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 했고 미국이 그에 따라 쿠바를 봉쇄하며 대응하면서 제 3차대전의 위기에 봉착했었다. 갈등은 소련이 한 발 물러나면서 해소되었지만, 이는 매우 극적인 상황이었다.

 

1962년의 위기상황이 실제적으로 도래했는지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몇 년을 거슬러 올러가야 한다. 소련은 미국의 외교정책이 십여년에 걸쳐 약화되자 세계 곳곳에서 미국에 도전했다.

 

보통 전쟁은 한 측이 다른 한 진영이 약해졌다고 생각할 때 힘의 균형이 깨지며 발생한다. 1956년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중동에서 발발한 수에즈운하 위기와 맞딱뜨렸다. 이집트의 민족주의자 대통령인 나세르는 아랍 국가간 범연대 연합을 시도했고 수에즈 운하를 건드림으로써 얻을 실제적 이익이 없었음에도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했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은 모두 수에즈 운하에 관심이 있었기에 나세르를 저지하려고 했다. 미국은 나세르의 편을 드는 것이 소련과의 경쟁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보았고 소련이 수에즈 운하위기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운하를 차지하기위해 이스라엘과 연합했다.  그들의 계획은 이스라엘의 시나이 사막을 통한 군사작전으로 이집트를 압박하는 동안 수에즈운하를 빼앗는 것이었다. 이때에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이집트가 미국의 편을 들 것을 기대하며 국제법 위반을 사유로 모든 계획을 저지했다.  소련 연방의 니키타 쿠르쉐프(Nikita Khrushchev)는 이 기회를 활용했다.

 

1956년 당시, 헝가리에서는 소련이 세운 정권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는데 소련은 이를 잔인하게 진압한다. 1957년에는 스푸트니크호를 쏘아올리며 우주경쟁에 박차를 가했으며, 1958년에는 급기야 미국 군대를 포함한 서부 군대의 베를린에서의 철수를 요구하며 미국과 3여년간 다툰다. 소련은 또한 쿠바 혁명을 꾸미고 1961년에는 베를린 장벽을 건설한다.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의 패턴은 일정한데, 자국의 의도를 분명히 하는 것을 실패하고 핵심 이익이 무엇인지 적에게 명확히 하는 것을 실패했을 때 일어났다.

 

계산착오는 때때로 강대국간 전쟁의 시발점이 된다. 이는 제 1, 2차세계대전에서도 일어났는데 독일은 자신들이 서방으로부터 수데텐지방을 얻어냈기에 나머지 체코슬로바키아 지방도 점령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다시 지금의 분쟁상황으로 돌아가보자. 중국은 타이완해협에서 초음속미사일을 테스트하며 얼쩡거리고 있다. 중국이 왜 그러고 있는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이 반 미국 연합을 형성하는동안 똑바로 된 대응을 하고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도 그저 현상유지에 집중한다. 현 이스라엘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에게 이란이 배후에 있는 하마스를 소탕해야한다고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중국이 타이완에 위협을 가하는 이유는 설사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타이완은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정교한 칩을 만드는 공장이다. 미국은 타이완을 잃게될 경우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홍콩에서의 후퇴, 아프가니스탄의 후퇴,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 사태에 대한 미국 내 반전 여론등은 중국에게 계속 이상한 기대를 품게끔 한다.

 

지금 세계가 조 바이든 행정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약하고 별로 하지 않는 나약한 행정부로 생각한다. 세계가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론들은 미국을 완전히 분단되어 별로 힘을 쓰지 못하는 국가로 보고있다. 힘 없는 대통령을 가지고 나뉘어진 미국을 가졌을 때, 이때가 가장 우리가 깨어있을 때이다.

 

데일리인사이트 김성현 기자 |

찬성 반대
찬성
1명
100%
반대
0명
0%

총 1명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