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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보수주의 선언: 정치적 원칙 선언문의 의미

다른 보수주의 선언들과는 달리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이 특징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성경적인 원칙들이 받아들여질 수 있게 돼
신앙고백이 강요되는 <민족보수주의 선언>과 달리 1960년 <샤론 성명서>를 진정으로 계승

  <자유보수주의(Freedom Conservatism) 선언>은 신체, 양심, 재산의 개인적 자유와 더불어 가정과 공동체에 대한 존중과 그 안에서의 개인의 행복 추구가 보장되어야 함을 선언하며, 자유로운 시장, 재정의 지속가능성, 법치주의, 합리적인 이민정책, 인종 간 평등, 국익을 전제로 한 외교 정책 등을 지지하고 있다.

 

  <자유보수주의 선언>에서 하나님이나 종교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언문은 인간의 존엄성, 정부의 한계, 사유재산, 법 앞의 평등, 양심의 우선성, 가정에 대한 보호,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전제된 정부 정책 등에 대해 성경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이 어떤 정치적 원칙의 선언문에서 꼭 직접적으로 인용되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할까?

 

  <자유보수주의 선언>은 ‘초월적 가치’를 언급한 윌리엄 버클리의 1960년 <샤론 성명서>를 모델로 하고 있는데, 여기서 ‘초월적 가치’는 개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활용함으로써 실현된다.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진 않았지만, <자유보수주의 선언>의 원칙들은 명백히 기독교, 혹은 최소한 성경적 인류학의 유산이다. 이 선언문의 출처를 성경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선언문의 서명자들이 <자유보수주의 선언>에 명시된 원칙들을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들은 우리를 위하는 자들이다 (막 9:40).

 

  종교의 자유를 포함해 표현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제한된 정부, 사유재산, 그리고 자유 시장에 관한 원칙들은 주로 유대-기독교 문화에서 비롯되었지만, 이제는 보편화되었다. 예를 들어 이 원칙들 중 많은 것들이 1948년 유엔에 의해 비준되어 올해 75주년을 맞은 <세계 인권 선언>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한 원칙들은 기독교인이 아니거나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받아들이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이러한 정치적 원칙의 선언문들을 통해 동일하거나 비슷한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성경적인 원칙들이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되는 것에 감사함을 가질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8)’고 말했다.

 

  물론 <세계 인권 선언>과 같이 <자유보수주의 선언>은 복음이 아니다. 하지만 신앙 밖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의식적이든 아니든) 참되고 선한 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부지중에라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사용된다. 모든 사람들은 (신앙 밖의 사람들일지라도) 완벽히 옳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서는 안되며 각자의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져야 한다.

 

  또한, 특정한 신학을 정치적 원칙에 포함시키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윌리엄 버클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샤론 성명서>에서 그가 믿는 신에 대해 언급한 것은 매우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작년에 있었던 <민족보수주의자 성명>은 다수의 기독교 국가들의 공공기관과 민간기관 모두가 기독교를 '존경'해야 한다고 불길하게 선언하면서, 기독교 외의 종교는 ‘자신들의 영역’에서만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면, 비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집과 그들의 종교기관에서만 자유가 보장되는 이류 시민들이라는 뜻이다. 버클리는 결코 그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유보수주의 선언>은 진정성 없는 신앙 고백이 강요되는 상태를 요구하는 <민족보수주의자 성명>보다 훨씬 더 바람직하며 기독교적이다.

 

  버클리의 <샤론 성명서>은 '영원한 진리'를 인용하면서도, 그 모든 정치적으로 신중론적인 주장들을 ‘초월적인 계시’로 혼란스럽게 하지 않았다. 우리는 보수주의자로서 우리의 집단적 판단과 역사적 경험을 통해 우리의 정치적 관점을 하나님에 대한 궁극적인 진리에 뿌리내리려고 노력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겸손함을 가지고 이러한 판단들을 하나님의 의지나 완고한 신조로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정치적 원칙과 제도들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한다.

 

  <The Spirit of Democratic Capitalism, 1982>에서, 가톨릭 사상가 마이클 노박(Michael Novak)은 ‘특정한 인지적 거주지’는 공유된 이해의 ‘신성한 덮개(canopy)’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한 거주지 밖에는 또 다른 많은 신성한 덮개들이 있고, 한 집단이 취하는 신성한 행동들은 다른 집단에서는 조롱을 받으며 이것은 소위 ‘사회적 지뢰’를 피하는 행동을 요구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다원적인 사회’는 하나의 ‘신성한 덮개’라는 것이 없고, 그 영적 중심에는 어떤 단어나 이미지, 상징이 그곳에서 모두가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빈 신전’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빈 신전의 비어있는 상태는 자유로운 양심에 의해 사실상 무한한 방향에서 접근되는 초월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관점은 “공동의 선(common good)이 개개인들의 선에 대한 시각보다 낫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진보와 개혁이 요구된다"고 상기시킨다. 노박은 공적인 삶에서 하나님에 관한 언급들을 긍정했지만, "이 땅의 것들을 초월하는 상징을 사용함으로써 만인의 양심의 자유를 보호하는 ‘정의되지 않은 지시자들(un defined pointers)‘”이라고 말했다.

 

  <자유보수주의 선언>에는 미국의 시민종교와 동조하여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쉽게 포함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지지를 받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언급의 부재가 이 선언문의 목적이나 의미를 앗아간 것은 아니다. <자유보수주의 선언>은 자유를 가리키고(point) 있다. 그리고 특정한 '덮개(canopy)' 아래에 있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이도 자유의 저자가 누구신지 알고 있다.

 

데일리인사이트 김상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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