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재정적인 위기에 놓인 현재, 국회에서는 연금개혁에 관한 논의가 뒤처지고 있는 가운데 당론을 거스르면서까지 ‘재정안정’에 관한 소신을 밝힌 국회의원들이 있다.
23일, 연금개혁청년행동(이하 연금행동)이 개최한 ‘위기의 국민연금, 마지막 골든타임’ 온라인 세미나에서 국민연금의 재정 현황, 공론화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다루면서,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연금개혁 관련 국회의원 질의서 내용 및 일부 답변 결과’를 공개했다.
질의서는 총 4가지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국민연금의 실질적 적자 규모인 ‘미적립부채’ 추산 및 공개 동의 여부”, “부채를 줄여 자녀세대의 연금 수령을 보장하는 재정안정론 찬반 여부”, “자녀세대 빚을 늘리더라도 연금지급액을 늘리는 소득보장론 찬반 여부”, “미적립부채 1800조원을 부담해야 하는 세대는 누구인지”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연금행동에 따르면, 현재 응답지가 제출된 국회의원으로는 회신이 도착한 순서대로 한창민 의원(사회민주당 비례대표), 이상식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용인 갑), 정을호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박수영 의원(국민의힘 부산 남구)이 있었다.
해당 의원들은 모두 실질적 국민연금 적자규모인 ‘미적립부채’를 국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미래세대에게 빚을 지우는 소득보장론이 아닌 ‘최소한 낸 만큼이라도 받을 수 있게’하는 재정안정론에 찬성했다. 더불어 미적립부채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상식 의원을 제외하고 경제활동 중인 현재 세대에게 부담을 지우는 ‘현재부터 국고를 투입하는 방안’의 손을 들었다.
또한 한창민 의원은 질의서의 청년들을 위한 한 마디를 적는 곳에 “청년들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어른들의(기성세대들의) 책임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며 “희망이 좌절되지 않도록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손영광 연금행동 공동대표는 응답 내용들을 발표하며 “일부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로부터는 질문지를 보내는 것이 강압적이라거나 자칫 당론과 반대되는 답을 하게 되면 곤란하다며 답변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오히려 야당 의원들은 최근 당론과 다름에도 재정안정론 찬성 입장을 보이면서 응답지를 여당보다 더 많이 제출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을 포함한 야권 정당들은 양대노총과 함께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인상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에 응답지를 제출한 야당 의원들은 사실상 기존의 당론을 거슬러서 응답을 내놓은 셈이다.
앞서 손영광 공동대표는 ‘연금의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 중 “현재 연금구조는 부채를 더 쌓으면서 상환을 미루다 기금이 고갈되면 그 시점부터 보험료를 급증시켜 적자를 메우는 방식”이라며 “이는 자녀세대에게 빚을 갚으라는 구조이고, 기금 고갈 이후에는 국민연금만으로 월급의 27~35%를, 앞으로 오를 건강보험료까지 포함한다면 50% 가까이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공론화위원회에서는 20대의 과반이 ‘미래세대에 큰 빚을 지우더라도 당장 연금액만 늘리면 그만’이라는 소득보장안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고갈시점만 알려주고 연금적자 상태와 부채 규모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손영광 공동대표는 “연금행동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파탄난 재정 상황을 인지한 상태에서 설문에 참여할 경우, 전 연령대에서 소득보장론을 지지한 응답자는 13.7%인데 반해, 연금폐지론을 포함한 재정안정론을 지지하는 응답자가 79.0%로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밝혔다.
해당 발표 중에는 청취자들을 상대로 실시간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이들에게 단순히 소득보장론과 재정안정론 중 어느쪽을 지지하냐고 물었을 때는 재정안정론이 66%, 소득보장론이 25%였는데, 이후 미적립부채 규모를 자세히 설명하고 다시 실시하자 재정안정론 99%, 소득보장론 1%로 그 격차가 더욱 극심하게 벌어졌다.
또한 청취자들에게 미적립부채를 줄일 방안들 중 어느 것을 지지하냐고 묻자 80%는 ‘납부 보험료 대비 과도한 수령액을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17%는 ‘당장 국고를 투입해야 한다’고 답했고, 2%만이 ‘현행 제도대로 유지하자’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의 수지 균형 방안에 관하여 질문했을 때는 77%가 ‘각자 내느 만큼 노후에 돌려받는’ 개인계좌 방식을 선택했으며, 소득대체율을 현실적인 만큼 줄이자는 주장에는 16%가, 보험료율을 증가시키자는 주장에는 8%가 지지를 표했다.
그리고 발표 막바지에 “자녀세대의 빚을 줄이는 데 반대하는 정당 및 의원에 대해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청취자의 90%가 ‘연금개혁 캠페인에 참여해 정당 및 국회의원을 압박하겠다’고 답했으며, 9%는 ‘다시는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1%는 ‘기존지지 정당이라면 여전히 지지할 것’이라고 답했다. 즉, 청취자의 99%가 연금개혁 문제에 소극적이고 미래세대의 부담을 신경쓰지 않는 정치인들에게는 지지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손영광 공동대표는 “현재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말도 안 되는 큰 빚을 지울 수는 없다”며 “미래세대를 생각한다면 앞으로는 부채는 나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연금개혁을 이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권예영 연금행동 전국대학생위원장은 앞으로 연금행동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며 “전국의 대학교 총학생회와 단과대 후보자들에게 국민연금에 관한 질의서를 배포하여 학생들의 여론을 조사할 것이며, 이후 지역별 청년 대표자들을 세운 뒤 네트워킹하여 청년들의 입장을 수렴하고 대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한 김상종 연금행동 공동대표는 회계적 관점에서 “미적립부채를 부채로 인식하든 안 하든 국민들이 연금개혁을 위한 의사결정에 이용하도록 충분히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소득보장론의 ‘어떻게든 준다’는 말은 국고를 턴다는 것인데 이는 비양심적인 포퓰리즘에 가깝다”며 “진정한 연금 개혁은 모든 세대가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연금행동이 국회의원들에게 발송한 질의서는 오는 28일까지 받을 예정이며, 이후 빠른 시일 내 미래세대를 위한 연금개혁안에 관하여 각 정당 소속 의원 개개인의 관심 여부와 응답 내용에 관해 정리하여 발표될 예정이다.
데일리인사이트 정성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