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으로 역임 중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모수개혁(보험료율 및 소득대체율 조정)은 굳이 특위를 만들 필요도 없고, 복지위 차원에서 충실히 논의를 통해 처리할 수 있다"고 말하며, 모수개혁부터 처리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오는 23일 열릴 공청회를 시작으로 2월에 연금개혁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 짓자는 의도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논의 자체는 빠르게 끝날지도 모른다. 거대 정당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연금개혁에 관해 보험료율 인상에 대해서는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고, 소득대체율 수준에만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박 의원 역시 이러한 의도로 모수개혁에 관한 논의만 빠른 시간 내에 결론을 짓자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재 연금개혁은 단순 모수개혁으로만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초고령화, 초저출산 사회로 돌입한지 오래되었고, 과거 '낙관적'으로 전망하던 수치보다 더욱 암울한 경제적 수치를 보이고 있다. 2017년 기준 장례인구추계는 2029년 이후로 인구 수가 자연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실제로는 2021년부터 감소가 시작하는 등, 정부의 추계는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구조를 개편하자는 논의가 시작되어야 하나, 박주민 의원은 이러한 문제의식 자체를 어물쩡 넘기려고 하고 있다. 이는 '미래에 언젠가는 구조개혁을 논의하겠지'라는 무책임한 낙관론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폭탄돌리기라는 말이다. 그렇게 늘어나는 국민연금 보험료의 부담은 오로지 미래의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인데 이것은 국가가 노동자를 대놓고 착취하겠다는 심보가 아닌가.
하물며 공청회 과정에 참가하는 진술인들조차 대놓고 편향적이다. 여야가 추천한 인원을 보면 주은선 교수, 남찬섭 교수 등 대부분이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각각의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참여해 연금개혁에 관한 많은 목소리를 전하고, 다각도로 문제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로지 해당 논의는 사회복지학과 지식인들만이 주도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노령층의 소득보장'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다. 현재 경제활동 중인 노동자들과 자영자들, 그리고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의 목소리는 "돈 내고 연금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그 안일한 생각으로 뭍혀버리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잘한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자동조정장치'를 연금개혁 공론화의 장에 꺼내놓았다는 점이다. 자동조정장치란 경제 상황과 인구 구조에 따라 자동으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 조정되는 시스템 장치다. 해당 장치가 도입된다면 노동자들의 보험료 부담이 압도적으로 늘어날 일은 없다. 여태까지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했던 다른 나라들의 선례 중 독일의 사례를 보면,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의 상하한선을 정해두는 등, 단서 조건을 법으로 정해두기 때문이다. 국회는 바로 이런 측면에서 자동조정장치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어야 한다.
더군다나 자동조정장치는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주장했던 자동조정장치는 일본의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참고한 방식인데, 자동조정장치가 해당 방식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에 국회에서는 어떤 방식이 대한민국에 적합할지 논의해야 한다. 특히 프랑스, 핀란드 등의 국가는 기대수명과 급여를 연동하는 방식을, 덴마크,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의 국가는 기대수명과 수급 연령을 연동하는 방식으로, 일본의 거시경제 슬라이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주어진 과도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채택할 수 있는지,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어떤 개혁을 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한민국이 연금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많은 논의들을 이어나가야 한다. 제도가 한 번 바뀌면 그 영향은 전국에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 개편을 논할 때는 각계 각층의 의견을 하나하나 수렴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정치권은 그렇지 못하다. 거대 야당은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못하는 양대노총에게 휘둘리고 있고,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 정당들은 유권자들의 불만은 무시한 채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극성 지지자들의 말에 휘둘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부터가 이름값을 못하는 '민주적이지 못한' 민주당이다.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국민연금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구조 개혁은 현재 불가피한 논의다. 박 의원 본인이 이야기한 대로, 연금 개혁은 '1~2년 된 과제가 아니'라 더욱 길게 바라봐야 할 논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구조개혁에 관한 확실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자동조정장치는 그 중 하나이고, 미래 세대 노동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확실히 도입되어야 할 '우리들의 숙제'이다.
모수개혁부터 논의하고 구조개혁은 그 다음이라고? 그렇다면 단순히 폭탄돌리기 밖에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치권의 고질적인 문제는 '급한 불 끄면 입을 씻어버린다는 점'이다. 당장 민주당의 의견대로 모수 개혁이 해결된다면, 본인들은 서로 자화자찬하며 이야기를 끝낼 것이지 그 후속적인 논의는 한참 지나서 시작될 것이 뻔하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오늘 박주민이 말한 내용은 국민들을 정치인들이 돈 내라면 따박따박 내어주는 호구로 보는 시커먼 속내를 가진 무책임한 정치인이 아닌 한, 그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이다. 박주민은 말을 똑바로 하라.
데일리인사이트 정성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