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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더 보이즈》와 냉소주의

 

*편집자주

아래 기사는 디스패치의 크리스찬 알레한드로 곤잘레스가 작성한 칼럼을 번역한 것으로, 아마존 프라임 드라마 《더 보이즈》의 냉소주의적 세계관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드라마 《더 보이즈》는 4개의 시즌 내내 매우 정치적인 색채를 보였다. 그리고 해당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그 정치적 태도는 점점 냉소적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더 보이즈의 세계관은 '부패한 기업', '사악한 슈퍼히어로', '그늘진 억만장자',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성난 군중들에 의해 통제된다. 대부분의 슈퍼히어로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신들처럼 평범한 세상을 돌아다니며, 범죄에 대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난동을 부린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을 무가치한 소모품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그들의 끔찍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슈퍼히어로들은 여전히 소셜미디어에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인간의 편협함에 호소하며 대중들의 지지를 얻는다. 그렇다면 해당 쇼가 보여주는 것은 특권층이 많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바보같은 우익들의 원조를 받는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이며 극도로 불공평한 사회이다.

 

해당 드라마의 냉소적인 도덕 세계가 바로 그렇다. 사회는 힘 있는 자들이 약자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디스토피아적 지옥과 다름없다. 대부분의 권력자들은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부도덕한 일이라도 서슴지 않는 이기적인 소시오패스들이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착취당하거나 기만당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가지는 소수들은 흩어져 있고, 약하다.

 

이는 오늘날 좌파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을 예술적인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사회의 병폐는 극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기업은 너무 강하고, 정치인은 탐욕스러우며, 대중들은 인종차별 및 성차별적인데다가 어리석어서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 이전 세대의 많은 좌파들은 진보에 대한 생각을 옹호했다. 그리나 오늘날 좌파 중 일부 계층에서는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비관적인 주장이 유행하게 되었다.

 

정치적 세계관은 사회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 그리고 어떻게 진일보 할 수 이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불행히도, 더 보이즈에서는 지금까지의 진척이 어떻게 사회가 작동하는지에 대한 냉소적인 관점을 초월할 수 있는지를 상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드라마의 다른 결말은 사회가 어떻게 되어야 하고,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에 대한 다른 비전을 제시하지만, 가능한 주요 결말은 모두 만족스럽지 않다.

 

예를 들어, 작 중 주요 빌런 중 한 명인 홈랜더(앤토니 스타)는 그를 물리치려는 인간과 슈퍼히어로 집단인 '더 보이즈'를 죽일 수 있다. 혹은 주인공 빌리 부처를 포함한 '더 보이즈'가 홈랜더를 죽일 수 있고, 그들 스스로가 똑같이 새로운 지배자가 될 수도 있다. 혹은 더 보이즈가 홈랜더를 죽이고 좋은 지배자가 되어 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고칠 수도 있다.

 

문제는 세 가지의 결말 모두가 내포한 정치성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만일 홈랜더가 승리한다면, 드라마는 허무주의적일 것이다. 부당한 권력이 무적이라는 점에서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

 

만일 더 보이즈가 승리하더라도 사회가 이전과 같이 악하다면, 쇼는 권력이 본질적으로 부패하다는 점을 의미하며, 이는 통치자들과 지배자들의 위계질서를 없애는 공산주의적이거나 평등주의적인 해결책이 갈 길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러나 불평등은 모든 인간 사회의 제거할 수 없는 특징이며, 이를 완전히 폐지하려는 것은 유토피아적 망상에 불과하다.

 

더 보이즈가 승리해서 사회의 모든 불평등이 해결된다면, 드라마의 각본은 너무 순진한 것이다. 작 중 이야기 대부분이 '사회 제도는 근본적으로 부패했음'을 보여주는 데 사용되었다면, 어째서 관객들은 단순히 사회를 운영하는 주체를 교체한 것이 모든 것을 좋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납득하겠는가?

 

그렇다면 정치적으로, 드라마의 진행은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쇼를 끝내기로 선택하더라도, 쇼의 정치적 메세지는 망상처럼 보일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교훈은 냉소주의는 정치적으로 막다른 골목이라는 점이다. 사회를 절망적인 디스토피아로 그린다면 좋은 정치적 선택의 여지는 없다. 냉소주의자는 사회를 불태우고 다시 시작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겠지만, 이는 환상에 불과하다. 지배층을 제거하고 좋은 사람들을 앉히자고 말하는 것은 순진하다. 사회가 망했으니 투쟁을 포기하자고 말한다면, 그는 허무주의자이다.

 

《더 보이즈》가 보여줄 가능성이 높은 실망스러운 결론은 우리에게 '매력적인 세계관'은 비관주의를 거부하고 사회가 진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좌파 뿐 아니라, 우파에게도 적용 가능한 교훈이다. 우파는 종말론을 항상 공평하게 분담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우익 냉소주의자들은 사회가 끝났다는 좌익들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그들은 다른 현상들에서 이것의 증거를 찾는다. 좌익들은 권력의 불평등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익들은 세속화, 가정 생활의 쇠퇴, 혹은 좌익들의 문화 제도 통제를 지적한다. 결국 우익 냉소주의자들도 망상에 불과한 말이나 비뚤어진 해결책을 제시할 뿐이다.

 

한편으로, 사회를 더 매력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진정한 불평등이 존재하고, 그것을 완화할 수 있으며,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불평등은 해소될 수는 있으나, 모든 문제에 있어 '완벽한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상황을 개선할 수 있지만 인간의 본성을 완벽하게 만들 수는 없다. 이것은 예로부터 항상 보수진영의 입장이었다.

 

《더 보이즈》의 더 만족스러운 결말은 바로 모든 폭력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추구되고 불완전하게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더 보이즈의 일원들은 홈랜더를 죽일 수 있지만, 여전히 다른 사악한 초능력자들과 싸워야 함을 보여주는 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결책을 《더 보이즈》의 제작진들이 진정으로 채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희망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해결책을 이용할 수 없다. 그리고 드라마는 네 시즌에 걸쳐 냉소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음이 입증되었다. 그것이 마지막 시즌으로 향하는 중 보여주는 딜레마이다. 냉소적인 전망을 유지하면서 '환상적인 해결책을 제안'하거나, 냉소를 버리고 보수주의적 해결책을 제안하거나. 

 

데일리인사이트 정성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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