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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관위의 저질 행정, 보모 국가의 민낯

 

대한민국은 이전부터 타 국가들과 달리 컨텐츠 관련 심의 결정을 상당히 보수적으로 내려왔다. 특히 게임물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는데, 이는 주로 게임에 대한 청소년 세대와 부모 세대의 인식 괴리에 기반하고 있으며, 부모 세대에서는 폭력성, 중독성, 사회성 등의 요소에서 자식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는 경향이 강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성인물에 대한 기준을 엄격하게 잡고 있기로 유명하다. 해당 기관은 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 바다이야기 사건으로 인해 출범하게 되었으며, 게임산업법 제25조와 제26조에 의거하여, 등급분류 신청자에게 게임과 관련된 자료들을 제출 받은 뒤,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게임물의 등급을 결정한다.

 

문제는 심의 과정이다. 게관위는 그동안 등급 심의 과정을 철저하게 숨기기로 유명한 정부 기관 중 하나였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규정 제16조 제1항에 따르면, 위원회의 회의록은 공개가 원칙이다. 타 법률의 위임 명령에 근거해 비밀로 분류되거나, 영업비밀의 경우, 혹은 공정한 업무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경우 등에는 공개가 제한되는데, 게관위는 이 중 '업무 수행'을 핑계로 삼고 심의 과정을 비밀에 부쳤다. 과거 '뉴 단간론파 V3'라는 게임의 회의록을 공개하라고 정보공개청구를 하자, 청구를 기각한 것이 이 사례였다. 

 

 

그러나 지난 8일, 게임 정보 유튜버 '김성회의 G식백과'가 민주당 강유정 국회의원실 소속 이도경 보좌관의 도움을 받아 최초로 심의 과정을 다룬 회의록이 공개됐다. 해당 회의록은 위에서 언급했던 '뉴 단간론파 V3'의 등급 분류에 관해 다루고 있다. 서류에 기록된 대화 내용은 아래와 같다.

 

등급위원: 내용적으로 누명을 씌워가며 죽이고 살아남아 승자가 된다는 자체가 참

연구원: 그런 게 청소년에 악영향을 주기에 성인등급으로

등급위원: 성인이 하기에도 무리가 있다고 보입니다. 

등급위원: 게임법 1조가 국민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것이고, 16조가 위원회 역할 청소년 보호, 이용자 보호이고.

 

유튜버 김성회의 설명에 따르면, 본디 위원회로 회부되기 이전, 연구원들은 해당 게임에 대해 '성인 등급이 적절하다'고 평가를 했음에도, 등급위원은 해당 게임에 '심의 거부'를 내리기로 처음부터 마음을 먹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근거는 너무 주관적이다. 게임 내부적인 묘사에 대해 단순히 '잔인하다'는 주관적인 평가를 내리면서,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고 분석까지 마친 연구진들과 다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결국 심의는 등급 거부 7표, 청소년이용불가 1표로 결정되었다. (원래 위원회는 9인으로 구성되나, 당시 1명은 불참)

 

이러한 결정에 연구원은 2014년에 동일한 묘사가 들어간 게임이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을 받은 것을 근거로 들면서 "거부사유는 무엇이냐, 14년도에 동일 내용으로 등급분류가 나갔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한 등급위원은 "위원들이 바뀌었으니까 그것은 참고사항에 불과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위원이 바뀌었어도 같은 묘사에는 같은 등급을 내려야 마땅한데, 최소한의 일관성 마저도 없는 모습이다.

 

이어 등급위원 측은 "스토리가 살인 조장이다. 여론도 반신반의하다. 살인을 미화시키고 정당한 수단처럼 하는 것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다"고 등급 거부 사유를 설명했다. 또한 게임산업법 제32조 2항 3호를 근거로 들어 '범죄, 폭력, 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 때문에 등급 거부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전형적으로 게임이 '폭력을 조장한다'는 선입견에서 나온 결정이다.

 

일단 게임은 폭력을 조장하지 않는다. 실제로 독일 하노버 의과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폭력성이 강한 게임 '콜 오브 듀티'를 플레이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들의 공격성과 신경 반응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참가자들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수차례 잔인한 이미지를 보여줬는데도 말이다. 더군다나 미국 사법부는 버지니아 공과대학의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을 예를 들며, "오히려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한 경우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게관위 회의록의 본질적인 문제는 심의 자체가 명확한 기준이 없이 지자체 등급위원의 주관에 따라 이뤄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연구원 측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현재 게관위 '등급분류규정'에 따르면,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의 경우 '선정적인 노출이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 '폭력, 혐오, 공포 등의 요소가 과도하게 표현', '반사회적으로 조장할 우려가 있는 표현', '표현의 정도가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 등으로 상당히 두루뭉실하게 기준을 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에는 심의 등급을 각 묘사별로 구체적으로 기준을 잡고 있다. 신체 훼손 등의 묘사가 들어가면 M등급(17세 이상), 가슴 및 둔부 노출 등의 선정적인 묘사는 T등급(13세 이용가)를 주는 식이다. 일본 역시 게임사의 제공 자료를 심의위원들이 '직접'보고 어떤 묘사가 포함되었는지를 확인하고 각각 세부적으로 판단한다. 가령 키스의 경우 가족 간의 키스, 연인간의 키스, 관능적인 키스를 각각 구분하는 식이다.

 

이로서 게관위의 존재 의의는 사실상 전무해졌다. 상술한 회의 내용에서 해당 기관이 심의를 내리는 기준이 '주관적'이라는 것을 등급위원 '본인'의 입을 통해서 실토했으며, 심지어 그 잣대마저도 일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더군다나 게관위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공공기관인데, 정부 기관이 이런 저질 행정을 범하고 있다는 것은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일이며, 국가 행정의 수치라고 볼 수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기관이 초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관을 없애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게관위는 그동안 이러한 행정 과정을 은폐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게임사와 게이머들 양측에게 불편을 안겨줬다. 그렇기에 현재 윤석열 정부가 게관위에게 사후관리 업무만 부담시키는 '게임심의 민간 이양'에서 한 발자국 더욱 나아가, 아예 게관위를 없애고 등급심의와 사후관리 모두 민간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납득 가능한 처방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들이 게임을 악마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관심을 가지고 자녀들과 깊은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아동 온라인 안전 법안이 통과되면서, 이를 반대하던 랜드 폴 상원의원은 "인터넷은 새로운 문제를 불러올 수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다.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부모의 지도는 온라인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게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아동과 청소년을 불건전한 컨텐츠로부터 지키기 위해 게임물관리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를 설립하고 컨텐츠를 심의하기 시작하자, 오히려 불법사행성 도박 광고가 판치는 불법사이트가 대안이 되어 범죄에 대한 노출이 더욱 잦아졌다는 것이 그 사례가 되겠다. 그런데 그런 현실을 만든 정부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그 피해는 버젓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보모 국가의 말로는 참혹하다. 정부는 '아이들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국민들의 믿음을 저버린 채, 이해할 수 없는 심의 결정을 내려 컨텐츠 제작자들과 소비자들에게 피해만 안겨주고 있다. 또한 어찌보면 국가가 표현 및 창작물을 검열하고 판단한 게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란 오만이 더욱 타락하고 음지로 숨어들어가는 아이들을 만들어 냈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보모 국가로부터 탈출할 때다. 아동 청소년을 들먹이면서 납득 불가능한 방향으로 창작물을 검열하고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멈추자.

 

데일리인사이트 정성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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