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 오나 낸스 (Bri Aunna Nance) 테네시주가 "하나님의 완벽한 설계(God's perfect design)"를 기리기 위해 2026년 6월을 '핵가족의 달(Nuclear Family Month)'로 지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빌 리(Bill Lee) 주지사는 주 하원과 상원을 모두 통과한 테네시주 하원 공동결의안 182호에 서명했다. 이 결의안은 기존의 LGBTQ '프라이드 먼스(Pride Month)' 기념을 핵가족 중심의 기념으로 대체하고,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UN) 등 "인구 통제를 위해 불임 시술과 낙태를 장려하는 유사 이념"을 비판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하원 발의자인 버드 헐시(Bud Hulsey) 의원은 핵가족을 "한 명의 남편과 한 명의 아내, 그리고 그들의 친자녀, 입양 자녀 또는 위탁 자녀로 구성된 가족"으로 정의하며, 이를 "가족 구조에 대한 하나님의 설계"라고 설명했다. 헐시 의원은 또한 전통적 가정이 미국의 형성과 번영에 기여해 왔다고 강조하며, "핵가족은 미국을 세웠고, 국가의 번영을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테네시주 입법자들은 아버지 부재(fatherlessness)가 미국 사회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견미단을 출발하기 전, 이승만 박사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건국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다. 하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이승만 박사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그 순간에 있었다면, 내가 이승만 박사였다면 과연 같은 선택을 내릴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견미단에 가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을 하와이에 착륙하는 순간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견미단을 통해 이승만 박사의 발자취를 밟으며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웠다. 더불어 더 많은 것을 배웠음에도 겁먹는 것이 아닌 반대로 하나님께 앞으로의 인생을 맡기겠다는 담대한 다짐과 고백을 했다. 견미단을 오기 전에는 스스로 믿음에 대해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어서 그냥 외면했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니 피할 수 없게 되었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이 이승만 박사를 사용하셨다는 사실이 와 닿았다. 이어 나도 하나님께 이승만 박사처럼 쓰임 받고 싶어졌으며 자연스레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었고, 이승만 박사가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는 기도를 하다 보니 이승만 박사와 나를 사람 대 사람으로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이승만 박사가 바라본 하나님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결국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견미단은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견미단이라는 프로그램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설레는 마음으로 지원을 하게 되었다. 지원을 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한 번의 불합격 통보와 그 뒤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극적으로 견미단에 함께하게 되었다. 견미단의 일원이 되는 순간부터 나는 일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구하며 이번 견미단을 다녀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일정이 시작되고 나서 제일 먼저 간 곳은 하와이였다. 하와이에서는 대한민국을 건국하신 선조들의 발자취들이 많이 담겨있었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많은 한인 분들이 직접 생활하시고 또 역사를 써나가셨던 곳들에 가보게 되면서 마음이 경건해졌다. 우리의 조상들이 하와이라는 타지에서 쉽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리고 마음껏 예배드릴 수 있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많은 기도와 행동을 쌓으셨다는 것에 정말 많은 감사함을 느꼈다. 그렇게 조선의 크리스천들이 행동으로 나섰고 그들의 기도가 쌓여서 대한민국이 건국 될 수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결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가 거
1883년 7월 제물포항에서 출발해 태평양을 횡단하여 미국에 도착한 견미단이 있었다. 이들은 워싱턴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아시아 선교사역에 열정을 갖고 있는 가우처 목사를 만났다. 가우처 목사는 1883 견미단과의 만남으로 조선이라는 나라에 아직 선교사가 파송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에 가우처목사는 미국 감리교회 선교본부에 조선 땅에 선교사 파송을 요청하며 2천 달러의 헌금과 함께 조선 선교를 향한 마음을 편지로 보내기도 하였다. “뉴욕 감리교 선교본부 파울러 CH.Fower 감독께, 감리교 목사 가우처 John F.Goucher입니다. 저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이듬해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워싱턴 DC로 가는 열차 안에서 조선에서 온 민영익과 견미사절단을 만났습니다. 그 후로 조선이라는 나라가 제 마음 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그동안 가려졌던 이 은둔의 나라에 선교사를 보내주기 바라며 선교비로 2천 불을 보냅니다. ” - 1883년 11월 5일 가우처 가우처 목사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조선 땅에 선교사가 파송될 수 있었다. 이처럼 1883년 견미단을 통해 조선선교의 문이 열렸다. 열차 안에서의 가우처 목사와 1883 견미단의 만남은 단순한
내가 깨어진 과정 마태복음 9장 16~17절에 의하면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헌 가죽부대는 이전 포도주의 발효로 발생한 가스로 인해 손상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새 포도주에서 발생한 가스를 담당하지 못하고 터져버리기 때문이다. 이번 나의 견미단 일정은 가죽부대 비유가 적절한 것 같다. 나는 19살 즉 4년 전까지만 해도 보수주의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고 그 반대진영에 몸을 담았었고 이승만을 “독재자” 내지는 전쟁광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한 바이러스 이후 나의 모든 사상이 깨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찬양하던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헌법의 가장 기본 정신인 “자유”를 침해하는 모습을 보며 내 지난 모든 날들이 후회되었고, 내가 미워하던 우남 이승만 대통령이 이 땅에 종교의 자유와 자유민주주의를 심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의 20살 시절부터 이승만 박사에 대한 궁금증과 그가 했던 모든 일들이 궁금해지며 자연스럽게 보수주의자가 되었다. 헌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를 보수주의에 눈을 뜨고 이승만 대통령의 행보를 공부하며 나는 계속해서 지식을 채워나갔다. 누구보다 열심히 세계로교회 손현보 담
천지개벽(天地開闢)! 1883년 미국 땅을 밟았던 견미단의 첫 인상이다. 그들은 외친다. 그들은 천지가 뒤집어진 듯 변화로 몸부림치는 미국을 보며 포효한다. "나는 어둠 속에서 태어났다가 광명 속으로 들어왔다.” 1883년 견미단에게 광명을 선사한 미국 – 그 광명의 원천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찬란하고 아름다운 혁신적 기술들이었을까. 세계의 중심으로 들어갔던 벅차오름이었을까. 견미단의 마음 깊이 견고하게 뿌리내린 단 한가지의 광명, 바로 미국의 정신(spirit)이었다.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창조되었다.” 미국은 분명한 건국정신과 함께 국가의 시작을 알렸다. 미국 자유의 상징인 ‘자유의 종(Liberty Bell)’에도 “이 땅 모든 거민에게 자유를 선포하라” 라는 구절로 이를 공고히 하였다. 미국은 이 ‘자유정신’을 단순히 문자로 남겨두지 않고 엄연한 실체로써 현현(顯現)하였다. 독립전쟁의 피로써 미국의 자유정신을 쟁취하였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 정신은 흐르고 흘러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정신이 되었다. ‘독립에 미친 늙은이.’ ‘망한 나라의 노예.’라는 소리를 들으며 그 참혹한 인생, 대한을 쟁취하였다. 이 숭고한 건국정신의 물줄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 1절 말씀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고백이다. 주님만이 전부라 내 마음의 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 예수님을 청년 이승만은 한성감옥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의 정신은 조국을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출옥 후 곧장 미국 유학행에 오르게 된다. 당시 칼뱅의 종교개혁에 입각한 커리큘럼으로 교육받던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보내며 ‘자유민주공화국’으로 대한민국을 세우는 건국의 그림을 더욱 구체화시켰다. 이후 미국의 1776정신을 이어받아 죄로부터의 자유(freedom)와 정치적 자유(liberty), 자유를 지켜내려 고군분투했던 그의 인생이 펼쳐진다. 하와이의 마우나라니 요양원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잠들었던 그의 마지막 여생까지, 글로 감히 다 담아낼 수 없는 나라를 향한 그의 사랑과 헌신으로 나는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내가, 그와 동시대에 태어나 그의 동역자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송구스러울 정도다. 현재 대한민국은 그 어느 순간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의 살아생전 지켜내려
견미의 이유 “아시다시피 우리는 자유가 생명 그 자체보다도 더 귀중함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외국 원수로는 최초로 뉴욕시 오픈카 퍼레이드에 초대된 이승만 대통령이 연설 중 한 말이다. 견미단의 필독서였던 <워싱턴의 겁쟁이들>에서 해당 내용을 읽으면서 나는 “자유”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견미단 활동의 취지와 메시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는 표현이 있듯이 우리는 사람들에게 자유가 생명만큼 소중하며 심지어 생명보다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자유를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할 때 이를 기꺼이 감당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1620년 정치적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에 도착한 필그림들은 예상치 못한 추위와 식량난, 그리고 질병으로 인해 출발한 인원수의 절반이 죽었지만, 도착 1년 후 영국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라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필그림을 기리는 National Monument To The Forefathers의 네 면에는 그들이 얻고자 했던 자유(Liberty), 그리고 그 자유를 보전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Education), 법(Law), 도덕(Mo
미국 필라델피아 독립역사공원에 가면 공원 한복판에 언제나 길게 늘어선 관람객들의 줄을 볼 수 있다. 옆에 위치한 독립기념관(미국의 독립선언문과 헌법이 서명된 건물)보다 훨씬 더 긴 줄이다. 바로 공원 중간에 전시된 자유의 종(Liberty Bell)을 가까이서 보기 위한 행렬이다. 매년 75만 명 정도의 관람객이 독립기념관을 방문하는 데 비해, 이 18세기 유물은 매년 2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이 종의 전면에는 뚜렷한 균열이 보이고 종의 머리둘레에는 “Proclaim LIBERTY Throughout all the Land unto all Inhabitants Thereof. Lev. XXV. v X”(이 땅 모든 거민에게 자유를 선포하라, 레 25:10)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자유의 상징’으로 알려진 이 자유의 종에는 놀라운 역사와 우리에게 주는 큰 함의가 숨겨져 있다. 자유의 종(Liberty Bell) 이야기 우선 자유의 종을 둘러싼 전설과 역사적 사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자유의 종은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문이 최종 승인됨과 동시에 크게 울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대륙회의가 열
미국의 50개 모든 주는 미국인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애칭을 각각 가지고 있다. 이 애칭은 각 주의 차량번호판에 어김없이 적혀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뉴욕 주는 1785년에 조지 워싱턴이 “제국의 왕좌(Seat of an Empire)”라고 불렀던 것이 유래가 돼서 ‘Empire State’라는 별칭을 가지게 되었고, 델라웨어 주는 1787년 가장 먼저 미국 헌법을 비준했다는 이유로 ‘First State’라고 불린다. 코네티컷 주의 별칭은 ‘Constitution State(헌법 주)’이다. 왜일까? “17세기 가장 위대한 미국의 설교가”라고 불린 토마스 후커(Thomas Hooker) 목사는, 영국에서 망명해 미국 매사추세츠에 정착한 초기 청교도 지도자들 중에서도 매우 개혁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당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와 선거권을 주어야 한다고 믿었고, 이런 ‘위험한’ 생각 때문에 동료 청교도 지도자들로부터 마저 배척받게 된다. 후커 목사는 새로운 정착촌을 건설하기 위해 1636년, 약 100여 명 정도 되는 자신의 교인들을 데리고 하트퍼드(Hartford)로 이주하고 그곳에서 코네티컷 식민주를 개척한다. 2년 후인 1638년, 그는 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