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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 250주년을 맞아 미국 동료 시민들에게 보내는 한 유대인의 진심 어린 조언

미국 250주년, 제퍼슨 강연에 선 유대인 석학 루스 와이스(Ruth R. Wisse)가 전하는 문명 지속의 조건

▲ AI 생성

 

반유대주의가 다시 고개를 드는 지금, 수천 년을 버텨온 유대 민족의 '지속성'은 자유와 문명이 어떻게 무너지고 또 어떻게 지켜지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루스 와이스(Ruth R. Wisse)는 루마니아 태생의 유대인이자 캐나다와 미국에서 성장해 하버드대학교 최초의 이디시 문학 석좌교수를 지낸 학자이자 작가로, 평생 자유의 가치를 탐구해 왔습니다. 지난 3월에 열린 제퍼슨 강연에서 그녀는 유대 민족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문명의 지속은 (1) 그 기반을 영원한 것, 곧 하나님에 둘 때 가능하며, (2) 그 가치들을 끊임없이 교육하고 전승하려는 노력에 달려 있고, (3)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지켜낼 힘과 의지를 통해서만 보존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과 서구 문명이 다시금 그 뿌리를 성찰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아래는 루스 와이스의 강연 전문 :

 

제퍼슨 강연을 맡게 되어 정말 큰 영광입니다. 그간 이 강연 시리즈에 저보다 훨씬 더 훌륭한 연사분들이 많이 오셨겠지만,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은 없었을 것 같네요. 저는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시민권을 얻기 훨씬 이전부터, 저 멀리서부터 이 나라를 사랑해 온 성인 이민자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미국이 지닌 풍요로움과, 이 나라가 우리에게 보장해 주는 자유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제공한 모든 선한 것들을 하나하나 되새기고 소중히 여길수록,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저는 이 나라를 더욱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강렬해집니다. 이 나라는 우리가 그것을 보존하고자 하는 분명한 의지를 가질 때에만 비로소 자유의 땅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미국이라는 이 위대한 나라에 비하면 훨씬 더 취약한 민족입니다. 거의 모든 면에서 더 많이 위협받고 위험에 처합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지속성’이라는 점에서는 다릅니다. 붉은색, 흰색, 푸른색의 성조기를 내건 미국이 곧 건국 250주년을 맞이합니다. 한편 히브리력으로 지금은 창세 이후 5,786년이며, 유대인들은 기록된 역사상 3,0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지속해 왔습니다. 그 중 상당 기간은 터전에서 쫓겨나 타향에서 떠돌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89년 전 동중부 유럽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피난처라는 것이 계속 보호되고 창의적으로 강화되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부모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이제 이 자리를 빌어 ‘지속력’에 관한 유대인의 메시지를 세 파트로 나누어 전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저는 50년 전 처음 발표되었을 때 제게 큰 놀라움을 안겨주었던 한 편의 이디시어 시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먼저 시의 첫 연을 소개하고, 이어서 설명을 덧붙이겠습니다.

 

װער װעט בלײַבן? װאָס װעט בלײַבן? בלײַבן װעט אַ װינט

בלײַבן װעט די בלינדקײט פֿונעם בלינדן, װאָס פֿאַרשװינדט

בלײַבן װעט אַ סימן פֿונעם ים: אַ שנירל שוים

בלײַבן װעט אַ װאָלקנדל פֿאַרטשעפּעט אויף אַ בוים

 

누가 남을 것인가? 무엇이 남을 것인가? 바람은 남을 것이다.

눈먼 자가 사라져도 그의 실명(失明)은 남을 것이며,

바다의 흔적으로서 한 가닥의 거품은 남고,

나무에 걸린 작은 구름 한 조각은 남을 것이다.

 

신시아 오직(Cynthia Ozick)이 번역한 이 시는 그간 시인들의 단골 주제였던 ‘변화’라는 문제를 같은 흐름 속에서 다시 길어 올리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영국 시인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가 묘사한 심상을 잘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한때 ‘왕 중의 왕’이었던 오지만 디아스(Ozymandias)의 조각상이 이제는 사막 한가운데서 몸통도 없이 남겨진 다리와 부서진 얼굴로 변해버린 이미지 말입니다. 그 부서진 받침대에는 “오, 위대한 자들아, 내 업적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오만함의 흔적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 거대한 폐허의 / 잔해 주변에는 /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모래만이 / 멀리까지 이어져 있을 뿐....” 이에 반해, 셸리의 친구이자 시적 경쟁자였던 존 키츠(John Keats)는 놀랍도록 잘 보존된 그리스 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아 이렇게 외칩니다. “아름다움이 곧 진리요, 진리가 곧 아름다움이다—이것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아는 전부이며, 알아야 할 전부이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셸리의 관점과 예술적 완벽함은 영원하다는 키츠의 관점은 각각 나름의 철학적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 이디시어 시인이 내놓은 관점은 완전히 색다릅니다. “누가 남을 것인가? 무엇이 남을 것인가?”라는 절박감 뒤에, 그의 시는 우리가 무상함의 상징으로 여기는 바로 그 요소들을 통해 위안을 건넵니다. 바람, 어둠, 구름 : 이토록 실체가 없는 이미지들이 어떻게 ‘지속성’에 대한 우리의 불안을 달래줄 수 있는 걸까요?

 

피난처는 지켜지지 않는 한 지속될 수 없다.

 

지금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전설적인 작가 아브라함 수츠케버(Abraham Sutzkever) 본인이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제가 대신해서 여러분께 그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 수츠케버는 1913년 폴란드령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듬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의 부모는 세 자녀를 데리고 전쟁을 벌이던 독일군과 러시아군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그가 세 자녀 중 막내였지요. 그들이 시베리아 옴스크에서 찾은 피난처는 그들에게 고난과 병마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에게 시베리아는 시의 발상지로 다가왔고, 그가 창작에 눈을 뜬 이 경험은 훗날 그의 첫 서사시인 『시베리아』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일곱 살 적의 자신을 발견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풍경 속에 그려냅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소년은 썰매로 된 영구차를 따라 장지로 향하고, 아버지를 따라 눈 덮인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힙니다. 바로 그 순간, 가슴에 품고 있던 비둘기 한 마리가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고, 그를 위로, 생명 쪽으로 이끌어 올립니다.

 

소년 아브라함에 대한 이 신화적인 묘사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성경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다만 그 배경이 불타는 중동에서 얼어붙게 추운 북쪽으로, 아들을 제물로 바칠 준비가 된 아버지에서 오히려 아버지를 희생시켜야만 하는 아들로 뒤바뀝니다. 그리고 희생 제물로 등장하는 숫양 대신, 생명이 회복될 것이라는 비둘기의 약속을 통해 구원받습니다. 이런 성경적인 비유가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성경이 몸에 밴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게 감지됩니다. 수츠케버에게 시는 죽음에 맞서는 힘입니다. 전쟁과 질병, 그리고 죽음으로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힘이며, 인간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변혁적인 힘입니다.

 

1921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수츠케버의 어머니 레이네(Rayne)는 아이들과 함께 당시 폴란드에 속해 있던 빌나(오늘날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정착했습니다. 제 외할머니는 그곳에서 큰 유대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빌나는 탈무드 공부와 번성한 유대 문화 덕분에 오랫동안 ‘리투아니아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던 도시입니다. 저희 부모님이 수츠케버보다 약간 더 나이가 많으신데, 부모님이 1920년대 그곳에서의 삶을 회상하실 때면 저는 제가 마치 너무 늦게 태어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빌나에 거주하던 6만 5천 명의 유대인들은 이 도시의 다민족 인구 중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고, 현지 리투아니아인과 폴란드인들 간의 치열한 민족주의 경쟁 속에서 그들 역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게 되었습니다. 빌나에서만 다섯 개의 이디시어 일간지가 발행되었고, 유대인 학교 네트워크를 위한 유대인 교사 양성기관과 유대인 연구소(YIVO, 뉴욕과 아르헨티나에 지부 보유)가 설립되었으며, 전 세계를 순회하는 이디시어 극단까지 활동했습니다. 시온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수츠케버의 형은 1930년대에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여 훗날 고국으로 돌아올 사람들을 위해 그 땅을 준비하는 데 힘썼습니다. 한편 아브라함은 10대 중반에 함께 축구를 하던 친구로부터 시 쓰는 법을 배웠고, 문학·예술 동호회인 '융-빌네'(Yung-Vilne)에 가입하여 미국 이디시어 저널을 포함한 여러 매체에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 맙니다. 독일의 폴란드 점령 2년 만인 1941년 6월, 독일군이 빌나에 진입하여 그간의 공백을 만회라도 하듯 학살을 가속화하기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은 게토로 강제 이송되어 그곳에서 박해받고 굶주리고 모욕당하다 끝내 살해되었습니다. 그 무렵 프레이드케(Freydke)라는 여성과 결혼한 상태였던 아브라함은 지하 저항 운동에 가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시가 가치 있다면 ‘시의 천사’가 불타는 검으로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자신의 시가 그리 가치 있지 않다면, 자신에게는 그 아무것도 요구할 자격이 없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상상의 힘으로 역경을 맞서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아내 프레이드케가 게토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을 때 나치는 그 갓난아기를 질식시켜 죽이고, 부부의 어머니들 또한 게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살해합니다. 하지만 수츠케버와 그의 아내는 숲속의 반(反)나치 게릴라 부대에 합류하기 위해 가까스로 탈출합니다. 그리고 수츠케버의 시는 그곳에서 다시 한번 기적 같은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한 리투아니아인 게릴라 지도자가 수츠케버의 시를 모스크바로 가져가 유대인 반(反)파시스트 위원회에 전달하게 됩니다. 그 위원회는 다름 아닌 스탈린이 미국의 신뢰를 얻기 위해 설립한 것이었습니다. 위원회는 소형 비행기를 보내 수츠케버와 그의 아내를 모스크바로 데려오고, 그곳에서 그는 ‘쿠르반(khurban)’의 첫 번째 살아 있는 증언자가 됩니다. 쿠르반이란 예루살렘의 제1·제2성전이 참혹히 파괴되었을 때를 가리키는 말로, 이후 영어로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사건을 지칭하는 데에도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전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수츠케버는 유대인 측 증인으로 소환됩니다. 이는 유튜브 영상에도 남아있는데, 수츠케버는 자리에 앉기를 거부하고 서서 증언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는 게토 안에서 나치가 주기적으로 자행한 집단 총살 장면을 묘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마치 붉은 비가 내린 듯했다.”

 

수츠케버는 모스크바에서 2년을 보낸 뒤 폴란드로 송환되었고, 파리를 거쳐 1947년 팔레스타인으로 향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을 반년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텔아비브에서 그는 그의 ‘가장 큰 기적’이라고 농담처럼 부르는 일을 해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갓 출범한 정부를 설득하여 이디시어 문학잡지인 『디 골데네 케이트(Di goldene keyt)』에 자금을 지원하도록 한 것입니다. 덕분에 이 잡지는 이후 50년 동안 이디시 문학 역사상 가장 훌륭한 간행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는 전 세계 유대인 공동체를 다녀보았으나, 급속히 성장하던 텔아비브에 정착했고, 고향의 품속에서 ‘일기에서 나온 시들’(Poems from a Diary)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일상에서의 삶과 회상, 그리고 사유를 담은 서정시들이었습니다. 수년에 걸쳐 연작된 이 시들이 그의 대표작을 이루게 되는데, 이제 우리가 다시 돌아가서 볼 이 시가 바로 그 연작의 시작을 여는 작품입니다. “Ver vet blaybn?” “누가 남을 것인가? 무엇이 남을 것인가?”

 

이 시구에 서려 있는 절박감이 이제 잘 느껴지시리라 생각합니다. 빌나를 비롯해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형성과 함께 이어져 온 수백 개의 유대인 공동체는 이제 유대인들이 모두 사라져 비어버린 상태입니다. 전쟁 후 살아남은 이들은 자신들의 도시와 마을을 기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뉴욕 공립도서관만 해도 그와 관련된 기념 서적 700여 권을 디지털화했습니다. 수츠케버 역시 귀중한 원고들과 문서들을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시는 오히려 그런 보존 작업에 깃든 절박한 불안감을 마치 놀리듯이 건드립니다. “바람은 남을 것이다 / 눈먼 자가 사라져도 그의 실명은 남을 것이며 / 바다의 흔적으로서 한 가닥의 거품은 남고…” “바람에 날려 사라진다”라는 말은 물질의 소멸을 뜻합니다. 그리고 실명은 시력의 부재이며, 거품은 파도가 떠난 뒤 남은 흔적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실체가 없는 것들이 어떻게 ‘영원함’에 대한 우리의 절박한 갈망에 응답할 수 있는 걸까요?

 

두 번째 연은 이 역설을 한층 더 심화시킵니다. “무엇이 남을 것인가?” 이 시는 뜻밖에도 하나의 음절은 남을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 음절은 히브리어 성경의 첫 단어인 ‘태초에(B'reishit)’라는 표현처럼, 무언가를 새롭게 낳는 창조적인 힘을 지닐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자연에도 창조적인 힘이 있다면, 예술과 인류에도 그런 힘이 있다고 믿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어떤 음악이 울려 퍼질 것인가?” 장미 한 송이가 바이올린처럼 울면, 일곱 가닥 풀잎은 그 울림에 감사하며 화답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의 결말부는 시선을 땅에서 하늘로 들어 올리며 그곳에서 어떤 위안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מער פֿון אַלע שטערן אַזש פֿון צפֿון ביז אַהער

בלײַבן װעט דער שטערן, װאָס ער פֿאַלט אין סאַמע טרער

שטענדיק װעט אַ טראָפּן װײַן בלײַבן אין זײַן קרוג

װער װעט בלײַבן? גאָט װעט בלײַבן, איז דיר ניט גענוג

 

북쪽 하늘에 흩뿌려진 수많은 별들 가운데서도,

눈물 속으로 내려앉은 별 하나는 남으리라.

그 잔 속의 포도주 한 방울은 굳건히 남으리라.

무엇이 남는가? 하나님이 남으신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민간 신앙에서는 별이 떨어지는 것을 지상에서 죽어가는 사람과 연관시킵니다. 이 시에서 상실을 암시하는 유일한 요소이자 애도의 표지는 그렇게 떨어지는 별입니다. 그 별은 인간의 슬픔에 조용히 동참합니다. 반면 잔 속에 굳건히 남아 있는 포도주 한 방울은 인간의 기쁨과 축하를 상징합니다. 떨어지는 별과 포도주 한 방울, 이 두 이미지는 모두 우리로 하여금 물질적 보장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도록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이 시가 내비치는 ‘생존’에 대한 미묘한 암시는 곧 우리의 안식처이기도 한 신비로운 신의 섭리를 상기시켜 줍니다.

 

유대 문명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확신이 필요했던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이 과연 답이 될 수 있었을까요?

 

많은 시들 중에서 제가 하필 이 작품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이 시가 제게 뜻밖의 감동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수츠케버가 1959년 처음 북미를 방문했을 때 그는 자신의 시 선집을 녹음으로 남겼습니다. 지금도 스미소니언 연구소에서 청취가 가능합니다. 그 녹음에는 수츠케버가 게토 시절과 그 이후에 쓴 저항과 끈기를 주제로 한 시들이 많습니다. 그는 수천 명의 군중 앞에서 연설하는 러시아 시인 예브게니 예브투셴코(Yevgeny Yevtushenko)처럼 큰 목소리로 시를 낭송했습니다. 수츠케버는 실제로도 모스크바에서 그렇게 큰소리로 시를 낭송한 적이 있습니다. 어쨌든 그리하여 저는 이런 성찰을 예상하지도 못했고, 또 수츠케버의 글에서 신의 존재가 이토록 분명히 언급되리라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비록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기도나 종교적 고백은 아닐지라도, 이 시가 지향하는 신앙의 방향성은 분명합니다.

 

성경의 시편 기자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어휘로 노래했다면, 이 시는 그와 정 반대편에서 출발합니다. 즉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습니까?”라고 묻는, 모든 것이 몰살당한 백성의 절망 속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파괴의 여파 속에서, 그리고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시인은 자신의 확신을 부정적인 증거 속에서 찾아냅니다. 그는 하나님의 위대함을 증언하는 시편 기자만큼이나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출발점은 잔해이며, 겨우 남아 있는 미미한 재생의 흔적들입니다. 시인은 그 힘을 바탕으로, 홀로코스트 기념비와 묘지, 그리고 기념 서적까지도 재생의 근원으로 바라봅니다. 이 시는 하나님이 우상 숭배를 금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지속’의 개별적 표지들에 대해서는 분명히 회의적이지만 이 시의 무게중심은 결국 ‘blaybn(남다, 머무르다, 지속하다)’이라는 단어에 실립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견뎌냈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수백만의 아들딸들이 희생되는 참사를 견뎌낸 아브라함은 단순한 생존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정한 지속을 찾으려면 그 근원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영원에 대한 믿음은 오직 영원한 것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래 동화에서 주인공에게 작은 단서를 건네주는 요정처럼, ‘지속성’에 대한 첫 번째 메시지를 이제 여러분께 전달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 메시지는 이미 우리 곁에 미국의 화폐라는 형태로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God in Whom We Trust)’이 이 땅의 참된 가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디시어에서 가장 번역하기 쉬운 단어가 아마 got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이보다 더 간단할 수 있을까요? GotGod(하나님)이니까요.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디시어의 got은 사실 끝에 t가 두 번 들어가는 게르만어의 신 Gott이나, 킹 제임스 성경의 영어 Jehovah와는 상당히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디시어 기도문 속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인 ‘고트 푼 아브롬(Got fun avrom)’은 히브리어의 엘로힘(Elohim)이나 아도나이(Adonai)보다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지긴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격식 있는 히브리어와 조금 더 일상적인 이디시어는 모두 유대교의 핵심 기도인 쉐마(Shema), 곧 “이스라엘아 들으라”라는 구절 속에서 하나로 어우러집니다.

 

이 기도를 정확히 언제 어떻게 배우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저희 집처럼 명목상 유대교를 준수하는 가정에서조차도 이 기도는 어릴 적부터 마음속 깊이 각인되기 마련이었습니다. ‘지속성’에 관한 두 번째 메시지를 시작하면서, 이 쉐마 기도의 서두를 영어 번역본으로 읽어 드리려고 합니다. 불편하게 여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저는 캐나다의 한 개신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곳에서는 매일 아침 주기도문을 암송하곤 했습니다. 덕분에 주기도문 또한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고, 저는 그것이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악에서 구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 모든 내용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확고한 도덕적 길을 제시합니다. 신명기에 나오는 쉐마 기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따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곧바로 이 기도는 방향을 전환하여 내용과 전달의 비율을 대략 1대 7에 이르게 합니다. 핵심 내용은 짧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지침은 길고도 정교합니다. (1)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쉐마를 암송하는 아이들은 장차 자신의 자녀에게도 토라를 가르칠 것을 지시받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라기보다 민족의 결속을 위한 교육적 지침에 가깝습니다. (2 & 3)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이는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이 아니라 공적으로 강론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현대의 일부 유대인들은 다른 이들에게도 가르치라는 이 분명한 명령에 거슬러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을 내면으로만 간직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는 일부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사회적 차별성을 너무나 부끄럽게 여기도록 하였고, 마침내 한 작가는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밖에서는 사람으로, 집에서는 유대인으로 살아라.” 그러나 언약 백성은 분명히 열방 가운데서도 유대인으로서 공개적으로 살아가라고 명령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르침은 언제 실천해야 할까요? (4 & 5)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많은 유대인들은 하루 중 가장 정신이 맑은 시간인 아침과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인 밤에 쉐마 기도를 암송합니다. 토라의 가르침은 항상 그들 앞에 있었고, 가르침을 위해서는 반드시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수 세대에 걸친 토라 주석들이 이러한 가르침에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해 왔습니다.

 

그리고 명령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보다 더 구체적이고 눈에 보이는 실천을 요구합니다. (6)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필락테리(phylacteries)입니다. 이것은 머리와 가슴을 이어주는 가죽 끈이 달린 작은 검은 상자입니다. 유대인 남성들은 성년식인 바르 미츠바(bar mitzvah)를 통해 성인으로서의 책임을 지게 되는 열세 살부터 이 매일의 의식을 시작하게 됩니다. 유대인 성인 남성으로서의 삶은 신앙의 제복을 몸에 두르는 데서 시작됩니다. 기도는 일종의 군복무가 되고, 사적인 신앙은 공적으로 드러나게 되며, 스스로를 하나님의 율법에 굳게 묶어 두게 됩니다. (7) “너는 또 그것을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그래서 문설주에 붙이는 메주자(mezuzahs)가 생겨났습니다. 메주자 안에는 쉐마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몇몇 이스라엘 예술가들은 격추된 이란 로켓에서 나온 강철과 알루미늄으로 이 메주자를 제작하기도 합니다.

 

공존하기를 두려워하는 일부 사람들은 유대인 가정임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이러한 종교적 표식들에 위압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살고 있는 뉴욕의 아파트에는 크리스마스 리스가 걸린 문도 있고 메주자가 달린 문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입주민들 사이의 우정이 이러한 표식에 따라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치가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그들을 식별했다는 것은 나치가 얼마나 악독했는지를 말해줄 뿐입니다. 출입문을 오갈 때마다 자신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상기하라는 그 긍정적인 계명을 따르는 유대인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문설주에 붙은 유대인의 표식들은 이제 번영하는 민주사회에서 종교의 자유가 얼마나 건강하게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상징들은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곳에서는 나타나지만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곳에서는 뜯겨나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생물학적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하버드에서 20년을 보내면서 저는 쉐마의 내용과 그것을 강조하는 방식 간의 비율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대학의 학문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인 문리대학(Faculty of Arts and Sciences) 회의에 행정 업무상 참여하면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1990년대 그 회의들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최근 별세한 교수들을 기리는 추모 발언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약력에는 종종 군 복무 경력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이 회의의 내용이 점점 더 라이오넬 트릴링(Lionel Trilling)이 ‘대립적 문화(adversarial culture)’라고 부르는 것처럼, 감사보다 불만이 우세해지는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이렇게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잠시만요.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죠? 소수가 다수를 위해 만들어낸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이 정부 체제를 지키고 강화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거죠? 우리 공화국의 영속은 하나님의 영감 아래 세워진 그 역사와 원칙을 부지런하고 인내심 있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가르쳐서, 새로 들어오는 모든 학생 세대가 그것을 이어가도록 이끌어 줄 우리 교사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저는 또한 이 구절을 인용하고 싶었습니다.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하지만 실제로 제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말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생물학적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인문학 분야에서는 끈질기고 창의적인 지적 형성이 부재할 경우 그것이 단순 공백으로 남지 않습니다. 그 자리는 곧 적대적인 사상들로 채워지게 됩니다. 매디슨 대신 마르크스가, 링컨 대신 레닌이,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 혁명 대신 이슬람주의가 그 자리를 침투하여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국기에 대한 맹세(Pledge of Allegiance)가 시민사회에서 주기도문 역할을 대신하도록 의도되었고, 미국 역사 교육과 헌법 교육이 성경을 대신하도록 의도되었다면, 우리는 문화 전승에 필요한 1대 7의 비율, 즉 내용 대비 강화와 반복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서구 고전 문헌의 뛰어난 교사이자 제퍼슨 강연의 첫 영예를 안은 라이오넬 트릴링은 그의 뒤를 이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에게 문화전쟁에서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컬럼비아 대학교 점거 시위의 정신적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물이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교를 포함해서 수많은 학교들이 시민으로서의 기쁨과 축복을 전수하는 일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결국 수천 년에 걸친 텍스트 전승에서 도출되는 저의 두 번째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소중한 유산을 존중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계승해 나가도록 가르침받고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더 젊은 국가인 미국이 어떻게 더 오래된 국가인 이스라엘에 영감을 주었는지 한 사람의 미국인으로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사상사 속에서, 18세기에 “보다 더 완벽한 연방을 형성하기 위해(to form the more perfect Union)” 나섰던 이들의 고심과 논의에 견줄 만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정의를 확립하며, 국내의 안녕을 보장하고, 공동의 방위를 도모하며, 일반 복지를 증진하고, 자신들과 후손들을 위한 자유의 축복을 확보하려는” 이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에게 몇 가지 유리한 조건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방어하기에 용이하고 인구가 드문 대륙이었고, 이미 잘 다듬어진 영국의 민주주의 체제를 본보기로 삼을 수 있었으며,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단순히 영국이라는 모태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놀라운 헌법을 만들어냈고, 그들이 설계한 정부 체제는 실로 경이로울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어디서든 연구되고 또 가능한 한 적용되어야 할 하나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1948년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의 주권이 다시 세워질 당시, 그 조건은 미국과는 정반대라 할 만큼 매우 열악했습니다. 2,000년 동안 외세의 지배 아래 있던 끝에, 마지막으로 이 땅을 점령했던 오스만 제국은 해가 지고 있던 영국에게 영토를 내주었고, 그 무렵 아랍인들은 제국주의적 야망을 펼치기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그리하여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공동체는 인도나 이란 또는 아일랜드와 같은 다른 신생 국가들이 겪었던 것에 비해 훨씬 더 거센 반대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알-후세이니(al-Husseini)가 이끈 무슬림 형제단의 테러 공격에 이어 군사적 침공까지 더해졌습니다. 이스라엘 국가 수립 3년 전인 1945년에는 아랍 연맹(Arab League)이 경제적 보이콧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유대 국가의 수립을 저지하겠다는 노골적인 목표 아래 결성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저지 수단은 거의 한 세기가 지난 뒤까지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다섯 개의 아랍 군대가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 중 영국으로부터 훈련받은 요르단군은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시온주의 지도자 다비드 벤구리온(David Ben-Gurion)은 이 포위를 뚫기 위해 히틀러의 수용소에서 막 도착한 이들까지 동원해 병력을 모집하는 한편, 유럽 전쟁에서 살아남거나 아랍 지역에서 추방된 수만 명의 유대인 난민들을 이스라엘 땅에 정착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1947년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은 하나의 승리로 환영받았지만 사실 이는 1920년 산레모 회의(San Remo Conference)에서 제시되었던 안보다 훨씬 더 작고 방어하기 어려운 영토만이 유대인들에게 할당된 것이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유대인들이 오랜 세월 유랑하면서 자치의 경험을 쌓아온 덕분에 민주 국가의 토대를 잘 닦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앙 정부가 수립되기 이전부터 이미 여러 정치 세력들이 분열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유대인 두 명이 모이면 회당이 세 개나 필요하다”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유대인 사회 내부의 분열은 심각했고,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종교 진영 역시 여러 파벌로 갈라져 서로 경쟁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벤구리온이 1948년 5월 중순, 영국의 위임통치 종료 시점에 맞춰 선포될 이스라엘 국가의 독립선언문을 작성하던 당시의 상황이었습니다. 영국의 공식적인 철수는 이스라엘 독립 전쟁에서 유일하게 유혈 사태가 없었던 순간입니다. 이는 참으로 역설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닐 로가체프스키(Neil Rogachevsky)와 도브 지글러(Dov Zigler)는 저서 『이스라엘 독립선언문(Israel's Declaration of Independence)』에서 이 문서가 얼마나 혼란스러운 과정을 거쳐 작성되었는지를 조명합니다. 초안 작성을 맡은 여러 인물들 중에는 모르데하이 베함(Mordechai Beham)이라는 33세의 텔아비브 변호사도 있었는데, 그는 국가 수립 이전의 팔레스타인 유대 공동체인 ‘이슈브(Yishuv)’에서 법률 부서의 보조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자료 수집을 위해서 그는 거리로 나갔고, 방대한 양의 장서를 가지고 미국에서 이주해 온 한 은퇴 랍비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베함은 미국 독립선언문과 영국 권리장전을 필사한 뒤, 개인의 선천적 권리에 근거한 현대 정치 주권의 자연권적 정당성과 유대 전통에서 도출한 논리를 결합하여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하게 됩니다. 로가체프스키와 지글러는 이 초안을 높이 평가하는데, 초안에는 독립 국가가 가진 “전쟁을 선포하고, 평화를 체결하며, 동맹을 맺고, 통상을 확립하며, 독립 국가로서 마땅히 할 수 있는 그 밖의 모든 행위와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전적인 권한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력 5708년 이야르월 5일, 곧 1948년 5월 14일에 벤구리온이 낭독한 독립선언문에는 베함의 초안 내용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이 문서는 이스라엘 땅에서의 유대인 역사와 1897년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이 시온주의 운동을 창시한 사실, 나치에 의한 유럽 유대인 학살, 그리고 1947년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 결의를 차례로 되짚을 뿐이었습니다. 이어 이 문서는 “다른 모든 민족과 마찬가지로 유대 민족이 자신의 주권 국가에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자연적 권리”를 언급하며, “이스라엘 땅에 ‘이스라엘 국가’로 불릴 유대 국가의 수립”을 선언했습니다.

 

미국의 독립선언문과 이스라엘의 독립선언문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영국 국왕이 식민지 주민들에게 가한 온갖 부당한 행위를 열거하며 그로 인해 독립을 위한 혁명이 정당화된다는 점을 강조했다면, 이스라엘의 독립선언문은 독립의 정당성을 모두 나열한 뒤 안심시키는 말과 호소로 방향을 틉니다. 즉 유엔을 향해서는 “유대 민족이 국가를 건설하는 데 도움을 주고, 이스라엘 국가를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이 땅의 아랍 주민들에게는 완전하고 평등한 시민으로서 국가 건설에 참여해 줄 것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또한 디아스포라 전역의 유대인들에게는 “오랜 세월 품어 온 꿈, 곧 이스라엘의 구원을 실현하기 위한 위대한 투쟁”에 함께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상대로 역사상 가장 불균형한 전쟁을 시작했던 아랍과 이슬람 지도자들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번뿐인데, 그것마저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이웃 국가와 그 국민들에게 평화와 우호의 손을 내밀며, 그들 자신의 땅에 정착한 주권적인 유대 민족과 협력 및 상호 원조의 관계를 맺을 것을 호소한다.”

 

당시 이스라엘이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처럼 곧바로 헌법을 제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런 정신 상태에 있을 때 헌법을 만들지 않았던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1992년, 저는 미국 영주권을 신청하던 중에 『연방주의자 논고(The Federalist Papers)』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자들의 탁월한 지성과 그들이 구상한 정부 체제를 가능하게 한 독자들의 지성에 대한 신뢰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들의 냉철함과 세상을 “고치겠다”고 나서기보다는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보수적 접근 방식에 감탄했습니다.

 

저는 특히나 그들이 ‘방어’를 강조하는 것에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연방주의자 논고』 1번부터 5번까지는 ‘외부의 무력 및 영향력으로부터 오는 위험’을 다루고 있으며, 이어지는 다섯 편의 논고에서는 예상되는 내전의 위험과 경제적 측면에서 스페인과의 경쟁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이 연방제를 수립해야 한다면서 핵심적으로 내민 논거는 바로 ‘공동 방어의 필요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군대는 지속 가능한 연합을 보장하는 수단으로서 제시되었습니다.

 

초기 시온주의자들이 조국을 되찾기 시작할 무렵 이런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연설을 준비하면서도 헤르츨이 자신의 구상 속에 ‘유대인 군대 창설’을 포함시켰더라면 아랍 측 대응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제브 자보틴스키(Ze’ev Jabotinsky)가 시온주의 운동에 그 아이디어를 도입하기 20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이슬람주의 지하드의 공공연한 의도를 제대로 인식하고 대응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그 의도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 경험이 그들에게 놀라운 적응력을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마치 율법을 세운 지도자 모세가 군사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권력을 넘겨준 전례를 따르듯, 1948년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그 누구도 아직까지 그 전모를 감히 다 이야기하지 못할 만큼 아주 인상적이고 강력한 전투력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릴 때 목청껏 불렀던 흑인 영가 ‘내 검과 방패를 내려놓으리라(Gonna lay down my sword and shield)’와는 정반대로, 유대인들은 강가에서 오히려 검과 방패를 집어 들어야만 했습니다. 더 이상 전쟁을 치르지 않으려면 이 무기들의 힘을 보여줌으로써 적들이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단순히 생존을 보장하는 수단을 넘어서, 다양하고 분열된 국민들을 자신감 넘치는 한 나라로 단결시키는, 이 나라의 민주화를 이끄는 핵심 장치가 되었습니다. 국가의 심장과 같은 존재로서 이스라엘 방위군은 타락한 적들과 싸우는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류의 고귀한 면모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국가적 자신감이 아직 이스라엘 학문과 예술 문화 전반에 완전히 반영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여전히 예비군 복무를 수행하고 자신의 자녀와 손주들을 전장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도덕적 자신감은 바로 이러한 국방의 모습에서 명백히 드러납니다. 청년들을 전쟁터로 보내기 꺼려하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도덕적 자신감은 반드시 이러한 방식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아실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은 견제와 균형 위에 세워진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의 모델이자 다른 곳에서 위협으로 통치하는 자들에게 도덕적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을 지닌 국가입니다. 미국이 독일과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 단호하게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유대인들은 그때 그 시기와 방식대로 이스라엘 주권을 회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은혜를 입었다고 해서 이제 이 작은 나라가 미국과 서방을 대신해서 싸워 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유의 기수인 미국이, 우리의 서구 문명을 지키겠다는 단호한 의지까지 갖춘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밝아질까요.

 

이곳은 우리의 조국, 자유의 달콤한 땅이오나, 우리는 이 땅을 충분히 찬양하지 못하고 있네.

 

물론 부모와 자녀가 있는 곳에서 차로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서 복무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에 비해서, 이라크나 한국에 군대를 두고 있는 미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조국을 지키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가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은 이 지구상에서 국제 질서를 최소한이나마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이며, 그 희망은 미군의 전투력과 미국 국민들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건강한 성인은 국가 방위에 대한 책임과 그 방위를 이끌고 지탱하는 충성심, 그리고 조국에 대한 사랑을 함께 짊어져야 합니다. 공존의 원칙과 실천을 처절히 겪어본 유대인들은 자기 방어 없이 살아남으려 했을 때 가장 큰 대가를 치러야 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병역과 군사적 준비야말로 구성원을 보호하려는 모든 사회의 근간이자 주춧돌임을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힘들게 쟁취한 자유를 지켜내는 데 있어서 미국으로부터 배운 이 교훈은 지금 이 시대에 더욱 강조되고 되새겨져야 할 것입니다. 이곳은 우리의 조국, 자유의 달콤한 땅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을 충분히 찬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 선조들이 반드시 이 나라 건국의 주역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우리 모두와 우리 자녀들은, 이 땅의 자유가 모든 산과 골짝에서 계속해서 울려 퍼지도록 끝까지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국립 인문학 기금의 후원으로 마련된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 문명에 지적·도덕적 확신을 심어주는 일이 인문학에 달려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생명력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될지 모르겠지만 문명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으로 남기 위해서 자신의 성장 세계를 희생해야 했던, 그리고 그 시절을 견뎌내고 결국 살아남은 수츠케버는, 우리가 누구 앞에 서 있는 존재인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일깨워줍니다. 그 확고한 인식이 한 사람을 다시 일으키고 유대 민족을 다시 일으킨 힘이었다면, 그것은 이 나라 미국이 2,500주년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힘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푸른색과 흰색’이 전하는 이 메시지가 ‘붉은색과 흰색 그리고 푸른색’을 더욱 굳건히 하고 영원히 지켜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데일리인사이트 장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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