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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터턴의 극단적 제정신: 오늘 우리가 그를 읽어야 하는 이유

정통: 우리가 이미 발을 딛고 선 경이로운 고향

 

[Law and Liberty 에 Rachel Lu 가 쓴 글을 번역하여 소개한다.]

 

체스터턴은 1908년 저서 『정통(Orthodoxy)』의 서두에 이렇게 썼다. “이 책을 권하는 나의 유일한 변명은, 이것이 어떤 도전에 대한 나의 답변이라는 점이다. 형편없는 사수라도 그것이 결투에 응한 것이라면 들어줄만하다.”

 

전형적인 체스터턴식 문장이다. 재치 있고, 기억에 남으며, 자기비하적인 유머가 있다. 책의 서두 두 문장 만으로 이미 독자를 완전히 매료시키고, 더 듣고 싶게 만든다. 이는 『정통』의 훌륭한 도입부일 뿐 아니라, 체스터턴의 작업 전반을 여는 문이기도 하다.

 

이 인상적인 포문에 이어, 체스터턴은 1905년 자신의 직전 저서 『이단자들(Heretics)』에 대한 서평가들의 비판을 언급한다. 그들은 체스터턴이 자신의 철학은 설명하지 않은 채 남의 철학을 책상물림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마도 책을 쓰고 싶어 안달 난 사람에게 그런 제안을 한 것은 경솔했을지도 모른다”라고 능청맞게 말한다. 한편 『정통』이 이 도전에 대한 응답이라고 하면서도, 체스터턴은 중요한 단서를 덧붙인다. “나는 이것을 나의 철학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내가 그것을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과 인류가 그것을 만들었고, 그것이 나를 만들었을 뿐이다.”

 

방대한 저작과 폭넓은 논쟁 상대를 가진 체스터턴은 평생 수많은 논박을 시도했다. 어떤 것은 명중했고 어떤 것은 크게 빗나갔다. 그는 매력적이고 기발하며 깊이 있었지만 동시에 엉뚱했고, 체계성이 부족했으며 종종 틀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빗나간 논박조차 이상하게 그는 품위를 잃지 않았다. 그 이유를 그는 『정통』의 첫 문장에서 밝히고 있다. 체스터턴은 자신의 공적 활동 전체를 하나의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 이해했다—현대성의 환원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이며 영혼을 황폐하게 만드는 병리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는 자신을 예언자나 철학자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새롭지도 독창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더 소중한,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사상들을 그저 다시 표현하는 경건한 전달자로 보았다. 그 사상들은 수세기에 걸쳐 위대한 사상가들에 의해 이미 다듬어지고 길러졌으며, 이를 은총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만이 그 길잡이였다. 체스터턴의 고전은 고난주간에 읽기에 더없이 적합하다. 성찰적 전통주의의 아름다움을 이처럼 생생하게 보여준 작가는 드물다.


생존을 건 싸움

 

체스터턴이 세상을 떠난 뒤 여러 해가 지난 후, 그의 열렬한 독자였던 C. S. 루이스는 그가 교활했다는 비판을 반박하며 이렇게 말했다. 비유하며 “검이 반짝이는 것은 검객이 그것을 빛나게 하려고 해서가 아니다. 검이 빛나는 이유는 검객이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기 때문에 아주 빠르게 휘두르기 때문이다”

 

이 비유는 매우 절묘하다. 그렇다면 체스터턴은 왜 “생존을 건 싸움”을 하고 있었을까? 영국 가톨릭(체스터턴이 개종한 종교)은 정당하게도 강한 방어성을 지닌 전통으로 알려져 있지만, 체스터턴이 토머스 모어(Thomas More)나 에드먼드 캠피언(Edmund Campion)과 같은 운명(순교)을 당할 위험에 처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게다가 『정통』을 쓸 당시 그는 아직 성공회 신자였다. 그의 긴박감은 자기 생명의 물리적 위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선하고 고귀하며 거룩한 것들을 뒤덮을 듯한 더 깊은 사회적·도덕적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1세기의 관점에서 보면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실제로 체스터턴의 대표작들을 읽다 보면 그것들이 100년도 더 전에 쓰였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그것은 1950년대보다도 훨씬 이전, 인터넷과 텔레비전은 물론 (『정통』의 경우) 세계대전조차 일어나기 전의 글이다. 체스터턴은 스마트폰도, 할리우드 영화도 경험하지 못했지만 오늘날 보수주의 문화 전사들이 맞서고 있는 것과 동일한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서구 문명의 영혼을 둘러싼 싸움은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는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당시 평범한 유니테리언-신앙을 접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어린 시절은 대체로 행복했지만, 그 신앙은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다. 젊은 시절 그는 미술학교에 진학해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와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Beardsley) 같은 인물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퇴폐주의에 빠져들었다. 이는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적 단정함에 대한 반작용으로, 새로움과 전복적 재치를 숭상하고 도덕을 경멸하며 주관적 경험에 집착했던 기조다. 체스터턴에게 이것은 일종의 영적 독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허무주의와 유아론의 안개 속에서 그는 깊은 우울에 빠졌고, 세계 자체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의심하게 되었다.

 

이 주제는 그의 후기 작품들에도 반복된다. 예컨대 『목요일이었던 남자』의 한 장면에서 무정부주의자들의 고위 위원회는 아침 식사를 하며 인류 문명의 붕괴를 논의한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인정하듯, 이 계획은 결국 세계를 특징짓는 ‘무(無)’를 추구하는 데 가깝다. 한 인물이 이렇게 말한다. “결말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면, 굳이 그것을 할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군.”

 

이에 다른 이는 답한다. “모든 사람이 마음속으로 잘 알지. 아무것도 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젊은 체스터턴은 ‘무엇인가 할 가치’가 있는 것을 찾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는 공허한 퇴폐주의를 거부하고 ‘실재’를,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을,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순수한 감사함으로 사랑하려 했다. 그것은 사랑과 결혼, 교회 생활, 그리고 결국 기독교 변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의 기독교 논증을 평가하기에 앞서, 그가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스터턴 역시 사회적 해체와 목적 상실에 시달리는 시대를 살았다. 그는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세계, 공허한 오락과 무의미한 야망의 심연을 직접 들여다본 사람이었다. 그의 재치 있는 경구와 언어적 기교는 바로 그 쓰디쓴 적과 싸우는 찌르기이자 방어였다.

 

서로 조화되기 어려운 신념들 속에서 불확실성을 견디며 사는 편이, 진실과 성실함, 그리고 의미 있는 삶을 포기하는 대가로 얻는 안락한 확신보다 훨씬 낫다.

 

절망에 빠진 문화 전사들은 체스터턴의 시대가 지금만큼 나쁘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물론 당시 사람들은 여전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으며, 대부분 교회에 다녔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그 시대 역시 영국, 유럽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깊은 혼란의 시기였다. 영국을 포함한 여러 제국은 붕괴를 향해 치닫고 있었고, 계급 질서는 무너지고 급진적 정치 이념이 부상하고 있었다. 세계는 곧 대전쟁에 휩싸일 예정이었다. 사상가들은 종교를 ‘대중의 아편’으로 치부하고 체스터턴 본인도 미술 대학에서 접했던 더 ‘계몽된’ 사상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체스터턴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H. G. 웰스(H. G. Wells), 클라렌스 대로우(Clarence Darrow) 같은 반전통 사상의 대표자들과 평생 논쟁했다. 만약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가 오늘날의 개인주의나 ‘오오워크(woke, 깨시민)’ 문화가 지배하는 세상의 위험을 체스터턴에게 설명한다면, 그는 즉각 이 시대를 이해했을 것이다.


역동적 전통주의

 

체스터턴은 ‘실재’를 사랑했다. 그러나 현실은 복잡하다. 서로 다른 진리들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때, 그 혼란을 줄이기 위해 세계를 단순하게 축소하려는 유혹이 생긴다. 이러한 유혹은 사람들이 작은 공동체를 떠나 복잡한 도시로 이동하면서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한 현실이 일상생활을 덮치기 시작할 때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현대 사회의 여러 환원주의적 병리의 한 원인이다.

 

체스터턴 자신도 때때로 이러한 유혹에 빠졌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분배주의(distributism)다. 『제정신의 윤곽(The Outline of Sanity)』은 그 제목과 달리, 그의 저작 중 가장 비현실적인 주장들을 담고 있다. 그는 대기업이 구조적으로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하고, 노동 절약 장치는 실제로 노동을 줄이지 못한다고 말하며, 자본주의가 끝까지 밀고 나가면 결국 국가가 반란을 억압하고 시스템을 지키기 위하여 사람들을 총으로 위협해 “독점 상점”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사람들이 고도화된 노동과 복잡한 시장 경제를 거부하고 자발적으로 농민적 삶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농촌 생활을 열렬히 옹호했다.

 

이러한 관점의 배경에 있는 고귀한 의도—소외에 대한 우려,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 사유재산을 자유의 토대로 보는 시각—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규모의 경제는 실제로 존재하며 종종 효율적이다. 노동 절약 기술 역시 실제로 존재하고 실제로 노동을 줄인다. 오늘날의 인간을 각각 “3에이커와 소 한 마리”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설령 가능하다 해도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제 역시 체스터턴이 외면하고 싶어 했던 복잡한 현실을 다룬다.

 

그럼에도 그는 전통이 어떻게 현실의 복잡성을 견디게 하는지 설명하는 훌륭한 틀을 제공한다. 세계가 크고 혼란스러울수록, 인간 사회를 일시적 취향과 환상보다 더 견고하고 지속적인 것에 묶어 둘 닻 혹은 ‘뿌리’가 필요하다. 전통이 바로 그 뿌리가 될 수 있다. 과거의 지혜에 단단히 뿌리내릴 때, 우리는 서로 충돌하는 진리들을 긴장 속에서 함께 붙들 수 있다. 체스터턴은 이를 이론으로만 설명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실천했다. 인문주의자 리 오서(Lee Oser)가 말한 “급진적 중도”와 유사한 영역을 제시하면서, 기독교 전통과 정통 신앙의 강한 뿌리가 신자들로 하여금 ‘제정신의 중심’을 유지하게 한다고 보았다. 이는 다양한 시각에서 볼 때 급진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놀라울 만큼 낯설고도 진실한 현실을 드러낸다.

 

이런 맥락에서 체스터턴은 생동하는 극단들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그는 독자들에게 무미건조한 일관성을 위해 어떤 것을 버리기보다, 열정적으로 그것들을 모두 끌어안으라고 권했다. 그는 주관적 경험에 집착한 퇴폐주의뿐 아니라 과학적 유물론과 극단적 합리주의 같은 모든 환원주의에 반대했다. 그는 자주 ‘광인’이라는 주제를 언급했다. 광인은 비이성적인 동시에,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일관된 사람이며, 자신의 작고 완벽한 세계관을 흔드는 진실을 철저히 거부한다. 체스터턴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는 어떤 사상이 인간의 영혼을 잃게 하는지로 판단되었다면, 오늘날에는 그것이 인간의 이성을 잃게 하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그에 반해 체스터턴은 실제 삶(살아감) 속에서 경험하는 ‘야생의 균형’과 장대한 모험을 제시한다. 조화되기 어려운 신념들 속에서 살아가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실과 의미를 희생하고 얻는 편안한 확신보다 훨씬 낫다.


영국의 재발견

 

『정통』의 중심 은유는 한 영국인 요트 항해자의 이야기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러 떠났다가 항로를 벗어나 낯선 해안에 도착하고, 그곳에 영국 국기를 꽂는다. 그런데 그곳은 사실 브라이튼의 파빌리온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고향을 ‘발견’한 것이다. 체스터턴은 이것이 우스운 일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장점을 지적한다. “해외로 나가는 모든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든 안도감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을까? … 새로운 땅을 발견하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가, 그것이 사실은 오래된 고향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쁨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있을까?”

 

그 요트 위의 남자는 체스터턴 자신이다. “나는 영국을 발견했다… 이 책이 농담이라면, 그것은 나 자신을 향한 농담이다.”

 

온갖 해로운 ‘인플루언서’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렇게 언어에 능하면서도 동시에 감사와 겸손, 목적의식으로 가득한 작가를 읽는 일은 깊은 감동을 준다. 그러나 단순한 향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의 시대에도 해로운 사상가들은 존재했다. 그리고 우리는 체스터턴이 ‘발견’했던 것과 동일한 지혜와 통찰의 원천에 여전히 접근할 수 있다. 자신의 일상 속 세계가 지닌 눈부신 경이로움을 깨닫기에 늦은 때란 없다.

 

데일리인사이트 성예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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