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콜로라도 대학 Timothy Fuller 교수가 Law and Liberty 에 기고한 서평을 요약 번역한 것이다.]
스티븐 B. 스미스(Steven B. Smith)는 신간 《정치가론(On Statesmanship)》의 서두에서, 세계가 불타고 있으며 자유주의 질서가 “고도의 쇠퇴(advanced decay)” 상태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다.
스미스는 냉소주의와 유토피아주의를 모두 경계하며 여러 상황 속에서도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치적 지도력, 즉 고대 및 전통적 의미의 정치가에 대한 탐구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진단과 그에 대한 대응은 고대와 현대의 정치가에 관한 사상사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로 이어지며, 결국 우리 모두, 특히 고등교육기관(대학 등)을 향해 정치가를 키우는 역할을 되살릴 것을 도전한다.
책의 각 장은 “정치가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최선의 통찰을 이끌어내는 독창적인 접근법을 제시한다. 스미스는 현대 문화가 “숫자, 통계, 데이터에 심취하여… 위대한 개인을 단순한 통계적 예외로 치우쳐 버린다”며, 이 과제가 현대 문화에서 종종 평가절하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치의 본질에 대한 그의 탐구는 고대 지혜를 되찾기 위한 프로젝트인 동시에, 현 사태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대응을 깊게 만드는 데 실패한 자유주의 교육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정치가(statesman)’라는 개념은 “공직의 일상적 요구를 넘어 공공봉사의 이상을 내포하는 규범적 개념… 이 책에서 나의 주장은 정치가들이 무엇보다 먼저 교육자라는 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탐구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스미스가 “국민들이 자신들에 대해 믿고 싶어 했던 것, 즉 그들의 가장 높은 열망에 대해 이야기한” 인물들이라고 칭하는 미국 대통령들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워싱턴,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케네디, 레이건은 그 시대와 장소에 전적으로 갇히지 않은 채 자신의 시대를 이해하는 동시에 열망을 표현할 수 있었던 통찰력 있는 “미국 문화의 독자가들”이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스미스는 ‘정치적 기업가(political entrepreneur)’, ‘정치적 비저너리(political visionary)’, ‘정치가(statesman)’라는 단순한 유형을 제시합니다. 정치적 기업가는 권력을 잡고 유지하려 하며 흐름에 편승하고자 한다. 정치적 비저너리는 우리가 본래 정치적 존재라는 고대적 인식을 초월하고자 하는 이른바 탈정치적(post-political) 이상을 추구한다. 후자의 인식은 우리가 개인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존재, 즉 다른 자아들 속의 자아이며, 개인의 성취가 협력과 조화에 달려 있음을 배울 수 있는 존재임을 뜻한다. 자유주의 전통은 이러한 조건을 개선의 촉매로 인정할 뿐, 인간 조건의 완전한 전환의 전주곡으로 보지 않는다. 반면 비저너리는 존재의 시련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고자 하며, 지난 한 세기 동안 이는 완성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파괴만을 낳았다.
정치가(Statesman)란 이 두 대안 사이의 중용(mean)을 찾아내고, 불가피하게 대립하는 대안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인간 조건의 한계 내에서 개선을 모색하는 사람이다. ‘기업가적’ 대안과 ‘비전가적’ 대안 중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당하는 상황 그 자체가 자유주의 전통의 쇠퇴를 보여준다. 이 책은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오른 이 시점에, 국가경영(statesmanship)의 필요성을 우리 모두가 깊이 성찰해 볼 것을 도전한다.
스미스는 첫 번째 유형을 보완하기 위해 ‘예언자(prophet)’, ‘테크노크라트(technocrat)’, ‘선동가(demagogue)’라는 또 다른 유형학을 제시한다. 그는 자연스럽게 무질서한 대중에게 새로운 양식과 질서를 강제할 기회를 창조적으로 이용하는 정치 공동체의 전설적 위대한 창시자들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집착을 설명한다. 스미스에게 이는 도덕적 제약을 초월하는 무제한의 강제를 정당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경영이 될 수 없다. 참된 정치가라면 중대한 기회를 추구할 때조차도 극단주의를 미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테크노크라트는 스스로를 “문제 해결사”로 자처하며, 광범위한 데이터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고안한 “해결책”이 존재하는 “문제”로 정치적 이슈를 번역한다. 스미스는 전통 철학을 진보적 과학으로 대체하고자 했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목표, 콩트의 실증주의, 평화로운 탈정치적 세계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카를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그리고 행정적 전문성에 기반한 행정부 수반의 리더십을 수용한 우드로 윌슨을 인용합니다. 선동가에 대해서는 “카이사르주의(Caesarism)” 또는 일인지배의 다양한 형태를 분석하며 설명한다.
이러한 유형들은 오늘날 우리의 정치 경험 속에서도 명백히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한 성찰은 이러한 대안들을 뛰어넘는 에이브러함 링컨에 대한 스미스의 광범위한 논의를 위한 길을 열어준다. 그는 “링컨을 정치가로 볼 수 없다면, 그 누구도 정치가일 수 없다”고 역설합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이라는 가장 어려운 조건 속에서 정치가론을 실증해 보였다. 스미스는 링컨이 미국의 헌정 이념을 완성하려는 노력 주변에 도사린 비극적 조건들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링컨은 연방을 구하고 노예제를 폐지하는 것의 근본적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양측의 자기의로움이 지닌 위험성을 간파했다. 그의 목표는 보복적 정복이 아니라 해결과 화해였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근본적인 목적을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유권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링컨은 제2차 취임 연설에서 “악의를 품지 말고 모든 이에겐 자비를(with malice toward none and charity for all)” 베풀 것을 촉구하며 이를 유창하게 표현했다. 여기에는 회개와 보수에 대한 링컨의 호소, 양측의 오만함을 초월하려는 의지, 그리고 모든 측의 피할 수 없는 비판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태도가 명백히 담겨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링컨은 의로운 대의를 위한 치열한 갈등의 필요성과 그 대의를 추구하는 데 수반되는 피할 수 없는 도덕적 대가를 모두 이해했다.
이 책은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오른 이 시점에, 정치가의 필요성을 우리 모두가 사려 깊게 검토할 것을 도전한다. 자유주의 전통에서 나타난 고도의 쇠퇴 증상을 식별한 후라면, 독자는 자유주의 전통 내의 해결되지 않는 긴장, 즉 그것이 무엇이었고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계몽주의 전통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더 깊은 논의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논의는 현재의 불만에 대처하는 데 있어 정치가 요구하는 조건들에 대한 우리의 성찰을 더 깊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나는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전야라는 자유주의 전통의 또 다른 결정적 순간에 에드먼드 버크가 발표한 《현재의 불만에 대한 고찰(Thoughts on the Causes of the Present Discontents)》과 급진적 혁명에 대한 그의 성찰을 떠올리게 된다. 버크의 저술을 닮은 스미스의 정치가에 대한 성찰은 그가 이전 저서인 《현대성과 그 불만(Modernity and its Discontents)》 및 《극단의 시대에 애국심 되찾기(Reclaiming Patriotism in an Age of Extremes)》에서 제기했던 관심사들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의 독자는 모든 시민이어야 마땅하지만, 스미스는 우리 시대 자유인문 학예(liberal learning)의 소명에 대해 깊이 고찰할 것을 자신의 학생들과 동료들에게 직접 호소하고 있다. 자유교양 교육은 공화국을 보존하는 데 본질적인 것으로 항상 이해되어 온 시민적 덕성을 회복할 수 있는 사려 깊음을 길러내어야 한다.
책의 결론은 “학생들이 ‘당면한 이슈’에서 무엇이 일시적이고 표피적인지, 그리고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그의 깊은 헌신을 표현하고 있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의 위대한 대학들이 정치가를 교육할 재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고등교육과 우리 모두를 향해 성찰적 삶을 포용하고, 온갖 불협화음의 압력 속에서도 사려 깊음을 유지하며, 깊은 숙고 없이 자기확신에 차서 행동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도전이다.
데일리인사이트 조평세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