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6월 "트럼프는 보수주의를 배신했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옥스포드 유니언 토론회에서 마이클 노울스의 반대 의견 녹취록을 번역한 것이다. 마이클 노울스는 미디어 기업 '더데일리와이어(The Daily Wire)'에서 The Michael Knowles Show를 진행하며, 프레이거유(PragerU)의 '북 클럽(Book Club)'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제 반대 측의 세 번째 연사인 마이클 노울스 씨를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장님. 초대해 주셔서도 감사합니다.
보수주의자인 제게 이번 여행은 좋아하는 일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하나는 아주, 아주 오래된 곳을 찾아다니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보수주의의 의미를 놓고 토론하는 일입니다. 사실 이 둘은 꽤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밤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도 바로 그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보수주의 배신죄로 유죄 판결하거나 무죄 석방하기에 앞서, 그가 대체 무엇을 배신했다는 것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보수주의란 오늘 밤 일부 연사들이 말했듯이 몇 가지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에 불과합니까? 가령 보호무역주의보다 자유무역을 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무역주의자였던 전임자 로널드 레이건의 보수주의를 배신한 셈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다면, 철강과 오토바이, 농업을 보호했던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의 보수주의를 스스로 배신한 것이 됩니다. 자유무역 자체도 초기의 보호무역주의적 보수주의자였던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과 심지어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보수주의를 배신한 셈이 될 것입니다.
이민 문제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제한 정책은 레이건과 부시의 보다 완화된 정책을 배신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완화된 정책들 역시 역사상 가장 보수적인 대통령으로 알려진 이민 제한주의자 캘빈 쿨리지의 보수주의를 배신한 것이 됩니다.
외교정책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공습은 보수주의적 자제를 배신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보수주의 진영이 외교정책에서 온건한 방향으로 기운 흐름 역시 부시 시대의 신보수주의적 매파 노선을 배신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부시 시대의 노선 역시 윌리엄 F. 버클리 주니어의 비둘기파적 입장을 배신한 셈이 됩니다. 버클리는 전후 보수주의 운동을 창설하기에 앞서 미국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시키지 않기 위해 미국우선위원회에 참여했던 인물입니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대표적인 보수주의자들은 정책을 놓고 서로 크게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보수주의를 몇 가지 정책의 묶음으로 볼 수 있다면, 보수주의라는 일관된 전통은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보수주의라는 전통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보수주의가 정책의 묶음이 아니라면 무엇입니까? 개인의 스타일에 관한 것입니까? 트위드 재킷과 나비넥타이, 신중함과 절제 같은 것 말입니다.
보수주의가 에밀리 포스트의 예절 지침서로 환원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분명 보수주의를 배신한 셈일 것입니다. 선원처럼 거친 입을 가진 억만장자 플레이보이는 저녁마다 포트와인을 홀짝이며 실크해트를 다려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머리카락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술조차 마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구 보수주의의 계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선배들을 돌아보면, 그들 역시 언제나 귀족적인 절제와 기사도 정신을 보여 준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이 지역과 관련된 사례를 하나 들자면, 윈스턴 처칠은 아침 식사 때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술을 물처럼 마셨습니다. 베시 브래독과 애스터 부인에 대한 그의 경멸은 트럼프 대통령이 로지 오도널에 대해 했던 어떤 말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습니다.
가장 보수적인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한 사람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성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역사상 가장 보수적인 정치가였을지도 모를 소 카토는 임신한 아내를 절친한 친구에게 사실상 내주었다는 일화로 유명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화려한 사생활이 보수주의를 배신한 것이라면, 보수주의는 영웅 가운데 많은 이들을 잃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수주의가 정책이나 개인의 처신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뜻합니까? 제도를 수호하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에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오늘 밤 이 안건을 찬성하는 가장 강력한 논거도 여기서 나옵니다. 트럼프는 개인주의자입니다. 트럼프는 포퓰리스트입니다. 제도보다 개인의 힘을 앞세우는 사람이며, 제도 중심의 정치인과는 정반대인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적어도 미국의 보수주의는 언제나 상당한 포퓰리즘적 요소를 포함해 왔습니다. 하버드 교수진에게 통치받느니 전화번호부의 첫 2,000명에게 통치받는 편이 낫다고 선언한 사람이 윌리엄 F. 버클리 주니어 자신 아니었습니까?
조지 워싱턴의 명령으로 제작된 초기 미국 국기에는 국민이 하늘에 호소해 왕을 전복하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제게는 꽤 포퓰리즘적으로 들립니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포퓰리즘이 제도를 약화시켰다는 비판은 사실입니까? 오히려 기록은 정반대의 사실을 보여줍니다.
오늘 밤 여러 차례 언급된 나토를 예로 들어 봅시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년 동안 나토를 탈퇴하겠다고 위협해 왔습니다. 그에게는 실제로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법적 권한도 상당 부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탈퇴하지 않았습니다. 시도조차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위협이 다른 회원국들로 하여금 의무를 이행하도록 강제함으로써 나토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만들었다고 자랑해 왔습니다.
트럼프의 반대자들은 그가 법원의 명령을 무시함으로써 사법부의 독립성과 권위를 훼손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또 다른 동등한 국가기관, 즉 행정부의 독립성과 권위를 지킨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는 제도 바깥에서 사법부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제도 안에서 사법부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하급심 판결에 항소했고, 적어도 절반의 경우에는 승소했습니다. 대법원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법원은 하급심 자체가 제도적 한계를 넘어섰다고 판결했습니다.
사실 트럼프의 정치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의 제도를 지키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제도란 바로 미국입니다. 다시 말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트럼프가 그 구호를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에게서 물려받았습니다. 이것 역시 그의 보수주의를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 구호는 이념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어떤 장소를 위대하게 만들자고 제안할 뿐입니다. 트럼프는 자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말합니다. 미국을 더 부유하고, 더 강하고, 더 안전하며, 더 존중받는 나라로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은 존 스튜어트 밀의 책에서 그대로 끌어온 문장과는 거리가 멉니다. 트럼프의 비판자들은 그가 이념적으로 정교하지 못하다고 조롱합니다. 좋습니다. 그를 어리석다고 불러도 되고, 무지하다고 불러도 되며, 편견에 사로잡혔다고 불러도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보수주의에 대한 배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보수주의는 애초부터 이념에 맞서기 위해 등장한 사상입니다.
오늘 밤 우리는 에드먼드 버크에 관해 조금 들었습니다. 영미 보수주의의 위대한 시조인 에드먼드 버크가 이념에 대해 실제로 무슨 말을 했는지 좀 더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버크는 이념을 "정치 형이상학의 서투른 교활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조세정책을 논하면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권리의 구별을 논하거나 그 경계를 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런 형이상학적 구별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싫다."
버크는 이념을 싫어했습니다. 마이클 오크숏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정치에서의 합리주의를 싫어했습니다.
자유주의와 달리 보수주의는 편견과 오랜 관행, 습관과 전통, 직관과 본능이라는 더 견고한 토대 위에 서야 했습니다.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 같습니까?
트럼프가 처음 트랜스젠더 화장실 문제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거창한 이론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어떤 권리에 대해 장황하게 설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지금대로 두면 됩니다. 지금 방식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편견, 오랜 관행, 습관, 전통, 직관과 본능입니다.
이런 태도가 싫을 수도 있습니다. 자유주의 비평가 라이오널 트릴링은 이런 태도를 싫어했습니다. 트럼프가 황금색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기 훨씬 전, 트릴링은 보수주의를 "짜증 섞인 정신적 몸짓"에 불과하다고 일축했습니다.
여러 면에서 그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고(故) 로저 스크루턴 경은 보수주의가 관념이라기보다 본능에 가깝다고 지적했습니다.
오크숏은 보수주의의 핵심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보수주의란 미지의 것보다 익숙한 것을, 시도하지 않은 것보다 검증된 것을, 가능한 것보다 실제적인 것을, 무한한 것보다 제한된 것을, 먼 것보다 가까운 것을, 완벽한 것보다 편리한 것을, 유토피아의 행복보다 현재의 웃음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의 정치입니다. 익숙한 것을 중시하고, 편견과 본능을 따르며, 실용성을 중시하고, 한계를 인정하고, 편의를 추구합니다. 물론 웃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거래의 기술'이지 '아버지에게서 온 꿈'이 아닙니다.
트럼프는 추상적 인류를 위한 거창한 이론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는 특정한 국민을 위해 실질적인 결과를 원합니다. 활황의 주식시장과 화려한 연회장을 원합니다.
그가 그러한 결과를 실제로 달성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그가 추구하는 것이며, 그의 정치가 지향하는 바라는 점입니다.
오늘 밤 이 안건에 반대한다고 해서 도널드 트럼프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필요는 없습니다. 보수주의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안건에 반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입니다. 트럼프에 대해 여러분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든, 보수주의에 대해서도 바로 그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데일리인사이트 성예솔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