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1일, 내 남편 찰리 커크(Charlie Kirk)가 총에 맞아 사망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남편의 차디찬 주검을 확인하고 유타주에서 출발해 피닉스에 착륙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24시간 동안은, 마치 열병 속의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차에서 내리자 아이들이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아이들은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하고 왔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내가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현관문으로 걸어가는데 가슴을 쥐어짜는 듯헌 낯선 통증이 느껴졌다. 사별의 슬픔이란 이런 기분일까? 이틀 전 밤 철리가 아이들과 함께 컵스(Cubs) 야구 경기를 보며 앉아 있던 그 소파에 앉았다. 내 속에서 파도가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고, 곧 거세게 몰아칠 것임을 직감했다.
"내가 이걸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날 아침, 밴스 부통령 부인 우샤에게 내가 한 말이다. 그녀는 내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과 비행기를 탔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착륙 15분을 남겨두고 아이들이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치다가도, 비행기가 착륙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안정을 찾고 괜찮아지잖아요? 앞으로의 시간도 그럴 거예요. 딱 다음 15분씩만 버텨내세요."
그녀의 말은 내 가슴 깊이 새겨졌다.
마침내 나는 용기를 내어 욕실로 들어갔다. 남편이 쓰던 세면대 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칫솔은 여전히 옆으로 누워 있었고, 그의 수건은 여전히 고리에 걸려 있었다. "저 수건은 절대로 치우지 않을 거야."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침실 문가에 서서 불을 켜고 그가 자던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베개를 바라보며, 시트 위에 사람의 향기가 얼마나 오래 남아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곳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했던 그 지극히 평범했던 날들을 가만히 되짚어보며 한참을 적막 속에 서 있었다. 아직은 그 공간을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나는 불을 끄고 3살 된 딸아이의 침대로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그저 다음 15분만 버텨내자".
몇 달 동안 나는 침실을 피했다. 고통에 천천히 맞서고, 문득문득 찾아오는 기억 하나하나를 차분히 받아들이는 것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매주마다 부엌에 남겨져 있던 그의 연애 편지가 없는 첫 번째 토요일이 지났다. 그의 32번째 생일, 나의 생일, 감사절. 크리스마스날에는 트리를 잘못 조립했다. 과부가 되었다는 것은 이전의 당연했던 내 집의 습관들이 새로운 습관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의미임을 깨달았다. 파도는 몇 번이고 나를 향해 다시 몰아쳤다. 그때마다, "그저 다음 15분만 버텨내자".
부활절, 우리의 결혼기념일, 우리 아들의 두 번째 생일,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의 공판 전 심리, 그리고 이제는 세 식구가 되어 떠난 메인주로의 연례 가족 여행. 그리고 딸아이의 네 번째 생일이 찾아왔다.
딸아이에게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불러줄 때 또 한 번의 파도가 밀려왔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와중에도 나는 끝까지 노래를 불렀다. 촛불을 끄는 딸아이를 꽉 안아주었다. 남편이 이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이는 내 팔을 잡고 뽀뽀를 해주었고, 그 순간 나는 이 아이 역시 자신만의 작고 거센 파도들을 견뎌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슬픔이란 참 묘하다. 내 안의 모든 것이 멈춰서거나, 차라리 시간을 뒤로 돌리고 싶어 할 때조차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먼저 떠난 이들은 우리가 남은 삶을 시간을 되돌리려 애쓰며 보내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다음 15분을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찰리는 내가 그 매 15분들을 '진짜 삶'으로 살아가기를 바랄 것을.
가끔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에게 분노하는지 묻는다. 나는 아니라고 답한다. 내 남편은 나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였다. 철리의 아내로 살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축복이었고, 나는 이 땅에서 그에게 주어졌던 사명을 이해했으며, 그는 그 사명을 완벽히 완수했다. 찰리는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이들도 자신이 믿음을 통해 발견한 영원한 희망, 그리고 우리가 다른 곳에서 채우려 애쓰는 그 깊은 갈증을 채워줄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게 되기를 바랐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는 '찰리 커크'였지만, 나에게는 내 삶의 전부인 사랑이었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때 우리의 믿음은 가장 힘든 시험대에 오른다.
진정한 믿음이란 우리가 모든 질문의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평안을 찾는 것이다.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악함 속에서 피어난 놀라운 선함을 보았다. 찰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믿음으로 돌아오고, 가족과 화해하며, 오래된 상처를 용서하는 모습을 보았다. 내 남편이 천국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그가 이곳에, 내 옆에 있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하나님은 선하시다"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다.
파도는 여전히 밀려오지만, 이제는 그 느낌이 다르다. 1년 전, 파도가 나를 덮치는 것이 느껴졌을 때는 이 파도가 나를 완전히 삼켜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파도를 알아보며, 때로는 반기기까지 한다. 그 슬픔의 순간만큼은 찰리가 거짓말처럼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은 보편적이다. 슬픔은 당신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어디 출신인지, 무엇을 믿는지 따지지 않는다. 그런 슬픔의 터널을 지나온 사람들은 그 파도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사라져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나는 찰리에 대한 추모와 나의 '삶'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이 슬픔의 자연스러운 순리임을 배워가고 있다. 온 마음으로 그를 그리워하면서도 동시에 아이들과 함께 웃는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기쁨을 느낀다.
지금 슬픔을 겪고 계신 분이 있다면,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한다거나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식의 상투적인 말은 하지 않겠다. 대신 내 소중한 친구가 해주었던 말을 전하고 싶다. "그저 다음 15분만 버텨내세요."
언젠가, 어쩌면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 15분이라는 시간 속에는 슬픔보다 더 많은 것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슬픔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겠지만, 삶이라는 아름다운 선물 역시 늘 그곳에 함께 있을 테니까.
에리카 커크, 2026년 9월 9일 뉴욕타임스 기고
데일리인사이트 조평세 번역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