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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와 기독교 현실주의의 7가지 원칙

핵시대, 이상적 평화주의를 넘어 민주적 견제와 세계 윤리의 필요성을 제시하다

 

[이 글은 2026년 8월 12일에  James Rowell이 Providence 에 기고한 글을 번역한 것이다. 필자에 관한 정보는 하단에 있다.]

 

1945년 8월 6일, 81년 전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진 후,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회고했다. "원자 에너지의 무기화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다만 기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시급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아인슈타인은 1945년 당시 핵무기의 파괴적 역량이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악과 악을 향한 인간의 내재적 욕망은 제2차 세계대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음을 간파했다. 이처럼 인류 본성은 변하지 않았음에도, 거대한 기술의 도래는 그 파괴적 잠재력을 억제하기 위한 기독교인들의 상응하는 노력을 요구한다. 기독교적이면서도 현실주의적인 목소리가 다른 종교 및 세계관과 조화를 이루어, 오늘날의 핵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를 안전하게 인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원칙 1: 핵 위협은 지속되며, 반드시 관리되어야 한다
핵무기의 존재는 핵전쟁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상호확증파괴(MAD)를 통해 역설적으로 그 가능성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평화주의자들의 논리는 전 세계적인 군축을 지향하지만, 핵무기 등장 이전의 세계 역시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물리학자들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청원하여 나치의 원자 폭탄 개발에 대한 위협을 선제 차단하려 했던 이유도 바로 그 위협 때문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열렬한 평화주의자조차 실용적인 예외를 둘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핵무기는 사용될 수도 없고 사용되어서도 안 되지만, 제한적인 보유는 불량 국가를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된다. 이는 강대국들이 서로 직접적인 전쟁을 벌이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효과도 갖는다.

 

원칙 2: 최고 수준의 공공의 양심이 요구된다
평화주의적 취지와 의도가 그 자체로 무의미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엄연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모두 마음속으로는 평화를 원한다. 적어도 서구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기 집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편안히 앉아 두려움 없이 살기를 바라는 내면의 욕망을 본능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악 또한 존재하며, 무장을 전면 해제하는 것은 불의한 자들에게 독재 정부를 구축할 기회를 제공할 뿐이라고 경고한다. 스스로 현실주의자라 칭하는 이들도 실상은 원치 않는 불쾌한 사실과 그에 따른 의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평화주의자에 가깝다. 기독교적 사랑이란 단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데 그치지 않고 엄혹한 현실을 헤쳐나가는 것임을 기억할 때, 우리는 이상주의보다는 신중함을 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의 목소리가 동일한 소망을 품은 모든 종교 및 철학의 찬가와 조화롭게 어우러지기를 기대한다. 다음의 단 하나의 질문이 이 핵심을 꿰뚫는다. "핵 버튼에 가장 가까이 있는 그 손가락을 통제하는 것은 과연 어떤 도덕적 양심이어야 하는가?"

 

원칙 3: 핵확산금지(Nuclear Non-Proliferation)
1970년에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진일보한 성과였으나, 모든 국가가 이에 가입한 것은 아니다. 핵무기 보유국이 줄어들수록 위험도 낮아질 수 있다. NPT 체결 이후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4개국이 새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현재 진행 중인 이란과의 전쟁 역시 다섯 번째 핵 보유국이 등장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조약에 서명한 국가들 사이에서조차 신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 원칙을 깨고 핵보유국의 대열에 합류하려는 유혹은 자위권 차원의 논리만큼이나 합리적이다. 극단적인 평화주의자만이 이에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를 확보하는 행위 자체도 표적이 되는 위험을 자초한다. 핵을 가진 국가는 상대 핵보유국의 표적이 되며, 핵이 없는 국가들은 우방국의 핵우산 아래 들어가 보호받기 위해 각축전을 벌인다. 핵무기가 전쟁을 완벽히 끝내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대국 간의 직접적인 침략 행위를 억제해 온 것은 사실이다.

 

원칙 4: 책임 있는 민주 정부
이 원칙은 앞서 언급한 두 번째 원칙의 연장선에 있어야 한다. 정부가 민주적이지도 않고 책임성도 갖추지 못했다면,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도덕적 지도력 아래 놓인 독재 정부에 불과하다. 라인홀드 니버의 유명한 통찰은 이 대목에 딱 들어맞는다. "인간에게는 정의를 실현할 능력이 있기에 민주주의가 가능하지만, 동시에 불의로 기울기 쉬운 습성이 있기에 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오직 국민만이 공공의 양심을 진정으로 대변할 수 있기에, 국민에게 책임을 다하는 민주 정부가 부재한다면 우리는 훨씬 더 높은 핵전쟁의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지난날의 광기와 전쟁을 돌이켜볼 때, 가장 책임 있고 민주적인 질서야말로 안전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다.

 

원칙 5: 더 큰 조화, 즉 '세계 윤리(Global Ethic)'
NPT의 핵심 서명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사이의 신뢰는 매우 낮다. 세계에는 여전히 종교적, 이념적 갈등이 무수히 존재한다. 기독교 대 이슬람,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 우크라이나 대 러시아, 중국 대 미국, 이스라엘 대 팔레스타인, 수니파 대 시아파, 민주주의 대 전제주의 등 불안에서 비롯된 분열의 목록은 끝없이 이어진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공공의 책임감과 세계적 윤리의식, 즉 유엔(UN)의 틀을 넘어서는 공통의 목표와 정의의 정신이 절실하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일은 인류에게 오랜 세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였다.
세계적인 핵 윤리가 과연 완벽히 실현될 수 있을까? 완전히 실현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국가도 핵전쟁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연대와 협력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언어, 문화, 종교, 역사의 공유라는 국가의 기반은 전 인류로 확장될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분열과 위험이 난무하는 국제 사회에서 우리는 가능한 한 이러한 차이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원칙 6: 전략적 제한 및 감축
존재하는 핵탄두의 총수량은 당연히 큰 우려 대상이다. 핵 공격을 억제할 수 있을 정도의 탄두만 있다면, 재정 부담만 늘리는 무기를 무작정 축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소한의 억제력에 필요한 탄두 수가 얼마인지에 관한 국제적 논의를 다시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어떤 형태의 전력이 가장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는가? 우리는 책임 있는 지휘 체계 아래 있지 않은 모든 탄두를 폐기하고, 안전한 손길에 있다고 간주되는 탄두의 수량 역시 제한해야 한다.

 

원칙 7: 책임 있는 현대화와 관리
기술이 발전하고 향상됨에 따라 구형 핵무기는 전략적 유용성을 잃거나 아예 쓸모없어지기도 한다. 결국 핵무기도 하나의 기계에 불과하므로 시간이 지나면 노후화되고 마모된다. 따라서 이를 보수하고 성능을 개량하는 것은 책임 있는 태도다. 그러나 핵전력을 현대화하고 유지·관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위협과 위험이 유발될 수 있으며, 이는 오직 평화적인 행동과 조약을 통해서만 예방할 수 있다.


우리 중 누구도 핵무기의 존재를 반기지 않는다. 그러나 기술은 판도라의 상자다. 그 기술이 주는 모든 선물은 필연적으로 축복이자 재앙이 된다. 핵무기는 한편으로 끔찍하게 파괴적이지만, 히로시마 이후 80년 동안의 세계가 그 이전 80년에 비해 물리적 충돌이 훨씬 적었다는 점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인류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우리 자녀들에게 더 나은 세상, 더 안전한 세상을 물려주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필자 소개
제임스 로웰(James L. Rowell) 박사는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2006년부터 플래글러 대학교(Flagler College)에서 세계종교학 전임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비교종교학 도서인 《Making Sense of the Sacred》를 비롯해 《Gandhi and Bin Laden: Religion at the Extremes》 등을 저술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비교종교윤리학으로, 간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라인홀트 니부어, 압둘 가파르 칸 등의 인물을 중심으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저자의 개인 웹사이트(https://www.meaningofreligion.com)와 유튜브 채널 'Meaning of Religion'을 통해서도 관련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다.
 

데일리인사이트 박수림 기자 번역 |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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