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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저항을 극우로 낙인찍는 위험한 습관

탈북 청년이 바라보는 현 한국의 사태
무조건적 극우 몰이 거의 북한과 같아

[이 글은 재미 탈북 청년 이현승이 UPI에 영어로 기고한 글을 번역한 것이다. 그에 관한 정보는 하단에 있다.]

 

대한민국은 수요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치렀다. 이른 오후 무렵,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전국 곳곳에서 투표용지가 동났다. 50곳의 투표소에서 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고, 그중 22곳에서는 투표가 중단됐다. 가장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러 온 시민들은 발길을 돌려야 했고, 때로는 몇 시간씩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북한에서 자란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평화롭게 거리로 나섰다. 20대와 40대가 시위를 이끌었고, 잠실 개표소에 모인 이들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들이 든 손팻말은 직접 손으로 쓴 것이었고, 거의 모든 팻말에 적힌 요구는 동일했다. 바로 재선거였다. 전국 100여 개가 넘는 대학의 총학생회가 이 사태를 규탄하는 성명과 선언을 냈다. 학생들은 캠퍼스 곳곳에 손으로 쓴 대자보를 붙였다. 그 요구는 당파적인 것이 아니었다. 절차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의 표는 소중하며, 국가는 우리에게 해명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그 꼬리표가 등장했다. 극우. 한국의 진보 진영이 젊은 시민들이 기대대로 행동하지 않을 때 그 명칭을 꺼내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25년 대선 캠페인 당시, 후보였던 이재명은 한 대학 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청년 세대 중 일부는 매우 보수화되었고, 어떤 경우에는 소수가 극우화되기도 했다. 그들은 마치 오염된 백지와 같다.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지는 법이다."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은 그 사람 혼자만이 아니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이었던 박구용은 보수 성향의 젊은이들을 두고 "시들 때까지 고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성찰의 능력은 없고 오직 계산만 하는" 존재로 묘사하고는 "희망을 품지 말라. 이것은 교정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후 그 직책에서 사퇴했다. 그러나 그 정서는 그와 함께 떠나지 않고 남아있다.

 

그리고 선거 사태 이틀 뒤인 금요일이 왔다.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MBC 간판 토론 프로그램의 전 진행자였던 정준희가(구독자 290만 명을 보유한 친여 성향 유튜브 채널) 매불쇼에 출연해 2030 세대의 일부를 "사상 체계도, 철학도, 일관된 가치 체계도 없는 극우 집단"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그는 "합법적인 방식으로 곤봉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며, 이 젊은이들은 설득될 수 없으니 대신 "힘으로 제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읽었을 때, 무언가가 떠오르며 제자리를 찾아 맞아 들어갔다. 정치적 분석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기억으로서 말이다.

 

나는 규정된 사고에서 벗어난 젊은이들을 향한 국가의 태도가 바로 설득이 아닌 곤봉인 체제에서 자랐다.

 

김정은은 이것을 명시적인 정책으로 제도화했다. 그의 정권이 인간 개조라 부르는 것을 통해, 그리고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같은 입법을 통해, 북한 정부는 젊은이들이 외부 문화 즉, 한국 드라마, 외국 음악, 독립적인 경제 활동에 노출되는 것을 강제 교정이 필요한 사상적 오염으로 규정했다.

 

나는 이것이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을 보았다. 2005년, 평양외국어대학에 다니던 내 친구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다 적발됐다. 그들은 노동교화소로 보내져 6개월간 강제노동과 사상 학습을 받았다. 국가가 사상 개조라 부르던 것이었다. 목적은 처벌이 아니었다. 교정이었다. 그들의 정신이 오염되었으므로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는 전제였다. 논리는 언제나 동일했다. "이 젊은이들은 타락했다. 그들의 사고는 잘못됐다. 그들은 이성으로 설득될 수 없다. 그들은 힘으로 교정되어야 한다."

 

이제 수요일 매불쇼에서 방송된 말을 다시 들어보라. 잘못된 방향으로 투표한 젊은이들은 "사상 체계가 없는 극우 집단"이다. 그들은 설득될 수 없다. "곤봉"이 필요하다. "힘"이 가해져야 한다.

 

단어는 다르다. 그러나 문법은 동일하다.

 

분명히 해두고 싶다. 나는 한국의 집권 진영이 북한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견을 가진 시민을, 정당한 불만을 지닌 유권자가 아니라 교정이 필요한 사상적 오염의 대상으로 분류하려는 그 충동, 그 반사 작용은 전체주의 체제에만 속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약화된, 그러나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권력을 쥔 자들에게 민주적 시민권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잊어버린 모든 정치 문화 속에 살아 있다. 그리고 그 반사 작용이 한 번이 아니라 거듭해서, 대선 후보에 의해, 집권당 교육연수원장에 의해, 전직 전국 방송인에 의해 표출될 때, 그것은 더 이상 사적인 견해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패턴이다. 한 한국 교수는 선거 이후 솔직하게 이렇게 썼다. "정치가 실패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말은 유권자를 향한 비난이다." 익숙한 길이 하나 있다. 그들을 극우라 부르고, 인지전(認知戰)의 문제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 길은 편안하다. 내부적 책임을 회피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그 길은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나는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본다.

 

극단주의자로 묘사된 그 젊은이들은, 실제로는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는 결코 할 수 없었을 일을 하고 있었다. 공공의 장소에 서서 정부를 향해 당신들이 우리를 실패하게 만들었다고 말하는 일이었다.

 

북한에서는 그런 생각이 형성되지 않는다. 억압되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전체 구조 자체가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막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인민은 하나이며 이견은 정의상 오염이라고 태어날 때부터 들어온 체제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법이다.

 

한국의 2030 세대는 오염되지 않았다. 그들은 시민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깊은 의미에서 교육받은 세대다. 그 시민권을 행사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극우라 부르는 것은 정치적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두려움의 고백이다. 자신의 권리를 알고 그것을 결코 잊지 않으려는 시민들 앞에 선, 오만한 기득권 세력의 두려움 말이다. 나는 그것이 가능한 나라를 찾아 어둠 속에서 국경을 넘었다. 내가 잠실에서 본 것은 민주주의가 마땅히 그래야 할 모습 그대로 작동하는 광경이었다. 그 며칠 뒤 정치 엘리트들에게서 내가 들은 것은, 어떤 민주주의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무엇이었다.

 

[이현승은 탈북민이자 글로벌피스재단 수석 전략가이며, 북한청년지도자회의 설립자이자 코리아 리저널 리뷰(Korea Regional Review)의 정기 기고자다. 그는 북한의 해운 및 광업 분야에서 일한 경력과 조선인민군 특수부대 하사로 복무한 경력이 있다. 2014년 가혹한 정부의 숙청을 피해 탈북했다. 동북재경대학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컬럼비아대학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데일리인사이트 정대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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