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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미록] 견미단, 하나님의 섭리

1883년 7월 제물포항에서 출발해 태평양을 횡단하여 미국에 도착한 견미단이 있었다. 이들은 워싱턴으로 가는 기차안에서 아시아 선교사역에 열정을 갖고 있는 가우처 목사를 만났다. 가우처 목사는 1883 견미단과의 만남으로 조선이라는 나라에 아직 선교사가 파송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에 가우처목사는 미국 감리교회 선교본부에 조선 땅에 선교사 파송을 요청하며 2천 달러의 헌금과 함께 조선 선교를 향한 마음을 편지로 보내기도 하였다. 

 

“뉴욕 감리교 선교본부 파울러 CH.Fower 감독께, 감리교 목사 가우처 John F.Goucher입니다. 저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이듬해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워싱턴 DC로 가는 열차 안에서 조선에서 온 민영익과 견미사절단을 만났습니다. 그 후로 조선이라는 나라가 제 마음 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그동안 가려졌던 이 은둔의 나라에 선교사를 보내주기 바라며 선교비로 2천 불을 보냅니다. ” - 1883년 11월 5일 가우처

 

가우처 목사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조선 땅에 선교사가 파송될 수 있었다. 이처럼 1883년 견미단을 통해 조선선교의 문이 열렸다. 열차 안에서의 가우처 목사와 1883 견미단의 만남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이자 계획이었다. 

 

나는 2024견미단을 통해서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것을 확신했으며 어떤 섭리의 일들이 일어날까 기대와 설렘만이 있었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의 기개와 담대함, 당당함이 하와이와 미국 현지 방문을 통해 얼마나 느낄 수 있을까 들뜬 마음뿐이었다.  

 

이승만의 시대정신

 

탁월한 스피치 능력, 뛰어난 지성을 겸비해 대한민국의 선구자로서 그가 남긴 논고와 업적들을 볼 때, 그는 빛나 보였지만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본 이승만의 발자취와 그의 삶은 나에게는 외로움과 고독함으로 다가왔다. 그가 여생을 보낸 마우나라니 요양병원 병실에서는 하와이의 멋진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보면서 우남께서는 대한민국을 그리워하시고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아들 이태산이 어린 나이에 죽었을 때도 그는 묵묵했으며 그 후에 아들에 대한 어떠한 그리움의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독립운동을 위해 경제적자유가 중요하다는 걸 알아 동지회 사업을 시작한 뒤 사업이 실패했을 때는, 동료들의 배신에는, 자유와 싸우는 전쟁 중에는, 최극빈 국가 대통령이 미국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휴가 차 떠나온 하와이에서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때는, 그 수많은 삶의 순간에 그는 어땠을까. 그의 삶을 묵묵히 묵상해보았다. 무엇이 그를 견디게 했을까. 무엇이 그를 그토록 갈망하게 했을까.

 

그의 삶을 묵상해 본 뒤 내게 들뜬 마음이 아닌 오히려 견미단 일정에 차분한 마음이 주어졌다. 특별히 2024견미단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셔서 특강을 해주신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장이자 <이승만의 하와이 30년>을 쓰신 이덕희 소장님과의 만남은 내게 이승만 대통령의 시대정신을 더욱 더 고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덕희 소장님께서 이승만 대통령이 쓰신 한국교회핍박이라는 논고를 “청년들이 독립정신을 교회에서 배우니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니 교회가 독립함으로 청년들이 독립정신을 계속해서 배울 수 있게 해야 한다.” 라는 짧게 한 문장으로 요약해 주셨다. 

 

그리고 “우남께서 스스로 교육자라고 하셨는데 그가 세운 학교의 목표는 새나라를 세울 일꾼들을 만들고자 하셨다”며 덧붙여 주셨다. 이 특강을 통해 지금 대한민국 다음세대의 교육에도 자유를 향한 외침, 진리를 향한 가르침이 담긴 이승만 대통령의 시대정신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께서 남기신 글들을 읽어주시면서 ‘왜?’ 라는 질문을 가진 마음으로 기록은 나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기록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체감 되어지는 시간이었다. 하와이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발자취들을 따라 한인기독교회, 오아후묘지, 마우나라니 요양원, 칼리히 초등학교를 방문하며 끊임없이 혼자 묵상하고 그의 삶을 그리며 생각한 이승만의 시대정신은 이것이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장 3-4절)

 

그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가 겪고 있는 환난과 인내와 연단이 결국에는 대한민국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남한, 북한의 모든 국민들이 진리와 자유를 누릴 날이 올 것이라는 것, 그 소망이 이뤄질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조선 땅에 선교사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조선에 뿌리내리기 시작 할 그때, 우남 이승만의 심령 안에도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 

 

이승만 대통령께서 쓰신 ‘한국교회 핍박’ 내용 중 “각국 교회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한국 백성을 이스라엘 백성같이 특별히 택하야 동양에 처음 예수교나라를 만들어가지고 아시아주에 예수교 문명을 발전시킬 책임을 맡기심이라”라는 구절이 있다. 이 논고를 통해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대한민국의 책임을 아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 많은 외로움을 참아내고 억울한 순간과 쓸쓸한 순간들을 참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대한민국의 책임 때문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이 가져야 할 시대정신, 이승만 대통령의 시대정신이다. 

 

그 시대정신은 제헌국회 기도문에서도 올려진 남북통일, 민생복락, 세계평화(선교)의 정신이다. 대한민국 땅에 민생복락을 허락해주셨으니 이제는, 북한의 해방이요, 통일한국이요, 새 나라를 세울 일꾼의 시대정신으로 무장되어 한반도의 카이로스를 준비 하여야한다. 

 

Real America First

 

하와이 진주만-애리조나 메모리얼을 탐방하기 전, 나는 이곳을 미국이 다시는 어느 나라에게든 이와 같은 수치를 당하지 않겠노라며 America First를 온 나라에 보여주는 미국의 경고 같은 곳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현장에 도착했을 때 ‘미국은 경고장도 크게 만드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메모리얼의 크기에만 놀랐다. 

 

배를 타고 아직 바다 속에 있는 애리조나 호를 보며 견미단 단장님이신 조평세 박사님께 질문했다. “이곳은 미국이 일본을 향한, 온 나라를 향한 경고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돌아온 답변은 NO였다. 미국은 진주만 공습 당시에 미국에 있는 민간 일본인들을 포로로 잡아두었고 그 역사를 지금까지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는 전 세계적으로 이런 전쟁의 역사가 없도록 미국의 역할을 다 하겠다는 의미로 Real America First 정신으로 지어진 곳이라고 하셨다. 

 

그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책임, America First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이것이 미국의 독립정신이며 건국정신으로부터 온 것이였구나. 몸으로 체득된 순간이었다. 애리조나 호 위에서 느낀 Real America First 정신의 전율은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미국보다 더 확실하게 Real America First 정신을 갖고 계셨다. 뉴욕 영웅의 협곡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보물을 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올해는 이승만 대통령의 방미 70주년 되는 해이다. 70년 전 1954년 7월 26일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우리 견미단도 국빈은 아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당시 미국을 향한 메시지를 마음에 담아 방문했다. 최극빈 국가 대통령이 미국에서의 카퍼레이드를 하였다. 그때 이승만대통령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영웅의 협곡거리를 걸으며 생각해보았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에게 타협의 기회를 주는 미국에게 Real America First 정신을 잃지 않기를 강력히 경고할 사명감을 가지고 방문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미국의 국부를 말하고 링컨의 말을 인용하며 우리는 절반의 공산주의, 절반의 민주주의의 세계에는 평화가 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한국과 미국이 미완성한 과업, 북한동포 해방과 중국의 자유화가 남아있다. 뉴욕 영웅의 협곡에서 찾은 이승만의 정신은 이어 필라델피아의 독립기념관, 리버티벨, 플리머스락, 메이플라워호, 그리고 워싱턴DC에서의 반유대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보며 미국 또한 그들의 독립정신과 건국이념을 회복하여 한국과 아직 못 다한 과업을 떠올리고 책임을 지도록 기도하게 하였다.

 

Freedom Is Not Free

 

견미단 일정의 절반은 묘지와 전쟁기념지였다. 견미단을 통해 배운 잊지 못할 한 문장, “보수주의자는 묘비로 투표한다.”이다. 처음 보는 수많은 이름들의 묘지를 눈으로 볼 때면, 오늘 이 하루하루가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도 누리지 못하고 있었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당연하게 눈 뜨고 눈 감는 이 순간은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희생했던 그들을 다시 기억하면서 “freedom is not free”라는 문장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껴진 순간들이 많았다. 수많은 자들이 지키고자 했던 그 자유를 온 세대가 누리길 원하게 되었다. 그들은 잊히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진리와 자유를 향해 끝없이 소리치는 자들을 통해 그들은 기억될 것이며 그들의 삶 또한 재조명될 것이다.

 

섬김과 헌신과 희생의 사랑

 

견미단이 하와이와 미국에 간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현지에 계신 교회와 많은 분들이 우리를 섬겨주셨다.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 생각될 정도로 많은 분들이 섬겨주셨다. 사실 첫날, 하와이 알라모아나 비치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만난 전 한인기독교회 양효직 목사님과 에드먼드 황 장로님과의 만남부터 시작해 하와이 도시락 업체 대표님, 김명혜 회장님, 황준석 목사님, 우남네트워크, 워싱턴DC 통일광장기도회, 하형록 목사님, 필라델피아 이논태버너클침례교회, 뉴욕 프라미스교회, 남신우 선생님, 강제모 박사님, 이혜경 교수님 등 알게 모르게 우리를 섬겨주시고 반겨주시고 축복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우리는 국빈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께서 한성감옥에서 성령의 체험을 하고 콜레라로 인한 시신들과 섞여서 전염병자들을 돌보지 않았다면 그 헌신의 시간들이 없었다면 이승만대통령은 나라의 독립을 위한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니라 생각한다. 나 스스로도 지금 북한동포의 해방을 외치면서 그들을 위해 섬기고 희생할 수 있을까. 한성감옥 시절 이승만처럼 북한동포의 삶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통일 이후 북한동포를 돌보는 것은 섬김과 헌신의 자세를 가진 자들이다. 그들이 진짜 북한동포를 사랑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번 견미단을 통해 글로써 보던 지식들이 몸으로 체감되는 순간도 있었지만 헌신과 섬김을 받는 순간들로 인해 돌처럼 굳어진 내 마음들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되는 시간이었다. 

 

하와이에서 3일차 되던 날 밤부터 몸살과 오한이 들어 고생했다. 스치는 바람에도 몸살기운 때문에 힘들었으며 그 후로 일정이 끝나는 내내 기침과 열을 달고 다녔다. 그렇게 아팠던 적은 몇 년 만이었다. 함께 하던 조원들은 내 짐을 항상 들어주었고 조장은 아파서 누워있던 나의 옆을 지켜주며 짐을 싸주었고 나의 룸메이트는 자기 전 아픈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밤새 나오는 기침소리를 들어가며 선잠을 잤다. 

 

이동하는 버스와 비행기 옆자리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일정 중 내가 기침을 멈추지 않고 하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물과 사탕과 약을 건네주었고 걱정해주었다. 그렇게 견미단 밖과 안에서 받은 섬김들로 내 마음도 부드러워져 견미단원 한사람, 한사람이 귀해보였고 단원들안에 보석과 같이 빛나는 마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욕심이 많은 성격인 나로서는 처음 가져보는 마음이었다. 나보다 단원들이 가진 귀한 마음들이 더 나눠지길 원했고, 단원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길 원하게 되었다. 

 

견미단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글로만 대략 짐작하는 지식과 굳어진 마음으로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특별히 워싱턴DC에서 통일광장기도회에 참석하고 특송을 했을 때는 잊을 수가 없다. 마음이 맞는 몇 명이서 시작한 기도회가 미국 전체에 기도회가 생기고 이제는 워싱턴DC의 허가를 받은 공식적인 예배와 기도로 드려진다는 게 나에게는 너무나 큰 감동이었다. 이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는 자들이 더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내게도 힘들어도 어려움이 있어도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도 함께 주어진 순간이었다. 

 

통일한국의 문을 여는 2024견미단

 

7월 6일 발대식 때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문장이었다. 누가 대한민국에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말했는가. 누가 대한민국은 끝났다고 말했는가. 지금 대한민국에는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시대정신을 가진 견미단이 있다. 한 손에는 복음을 들고, 한 손에는 사랑을 들고, 북한의 해방 뿐 아니라 통일한국의 문을 열어 북한을 지나, 중국을 지나, 실크로드 지나, 이스라엘까지 만민을 위해 기치를 드는 견미단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2024견미단 단장님 조평세박사님과 부단장님 손영광 교수님의 수고와 섬김이 없었다면 이 글의 모든 순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빌려 두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글: 박시윤 (1기 견미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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