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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미록] 한 알의 밀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 1절 말씀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고백이다. 주님만이 전부라 내 마음의 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 예수님을 청년 이승만은 한성감옥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의 정신은 조국을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출옥 후 곧장 미국 유학행에 오르게 된다. 

 

당시 칼뱅의 종교개혁에 입각한 커리큘럼으로 교육받던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보내며 ‘자유민주공화국’으로 대한민국을 세우는 건국의 그림을 더욱 구체화시켰다. 이후 미국의 1776정신을 이어받아 죄로부터의 자유(freedom)와 정치적 자유(liberty), 자유를 지켜내려 고군분투했던 그의 인생이 펼쳐진다. 하와이의 마우나라니 요양원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잠들었던 그의 마지막 여생까지, 글로 감히 다 담아낼 수 없는 나라를 향한 그의 사랑과 헌신으로 나는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내가, 그와 동시대에 태어나 그의 동역자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송구스러울 정도다.

 

현재 대한민국은 그 어느 순간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의 살아생전 지켜내려 하셨던 그 ‘자유’를 우린 잃어가고 있다. 국부를 기억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 자유를 위해 싸웠던 그를 기억하지 않는 것은 곧 자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어둠이 기세를 부릴수록 한 줄기 빛은 더 찬란하고 반짝이지 않던가.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자유의 가치를 수호하려는 청년들, 이승만 대통령이 꿈꿨던 ‘하나님 나라’를 함께 품은 청소년들이 그의 뒤를 따라가고자 ‘견미단’의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미국에서 공부하며 조국에 돌아가 할 일을 준비했던 이승만 대통령. 그의 발자취를 밟으며 ‘리틀이승만’이 되어보고자 7월 14일 저녁 9시 15분, 하와이행 비행기에 우리 견미단은 몸을 실었다. 

 

나는 이 여정을 통해 이승만 대통령이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다. 그와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왜 내겐 애끓는 애국정신이 없단 말인가. 이스라엘 백성을 너무 사랑하여 하나님께 호소했던 사무엘 선지자와 같이, 이스라엘 포로해방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던 다니엘과 같이 오로지 후세대를 위해 자신의 남은 인생을 드리며 대한민국의 건국을 위해 쏟아 부으셨던 이승만 대통령. 그의 수많은 시간들이 역사가 되어 지금 내 앞에 유적지로 펼쳐졌다. 

 

흑백사진 속 그를 보며 그가 다졌을 결연한 의지를 나도 다져본다. 결연한 의지 속 그의 눈빛이 슬퍼 보이는 것은 조국을 향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눈 감으면 보였을 조국을 두고 생을 마감했던 마우나라니 요양원의 병실 안에 서 있으니 그가 사랑했던 대한민국이 파도처럼 내 마음을 흠뻑 적셨고 어느새 내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면 어느 나라 국민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호놀룰루 오아후 공동묘지, 한국전쟁 기념공원, 6.25 전쟁 참전비가 세워진 곳곳들을 방문하면서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는 일임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아침에 눈 뜨면 밟던 내 조국 땅, 대한민국. 한 발자국이 닿아 다음 발자국을 힘차게 내딛을 수 있었던 이 땅엔 눈물 어린 그의 기도가, 힘겨운 외교의 노력들이 서려 있는 것이었다. 

 

<워싱턴의 겁쟁이들>이란 책에서 보여주는 이승만 대통령은 참으로 멋쟁이고, 베짱이 두둑한 사람이다. 6.25 전쟁 휴전 협정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의회 연설을 통하여, 기자회견을 통하여 끊임없이 북한동포 해방과 중국 자유화 문제를 미국에 토로한다. 외교에 능통했던 그는 갓 세워진 신생나라 대통령 같지 않았다. 그의 당당한 기세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면모요, 조국을 사랑하는 자만이 내세울 수 있는 프라이드처럼 보였다. 이 기세는 일제시대가 끝나고 해방 후, 공산주의와 싸우며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로 세울 수 있었던 토대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그의 적극적인 대미외교는 추후 6.25전쟁에서 미군과 유엔군을 참전케 하였고, 결국 수많은 국가에서 파견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은 탄생하게 되었다.

 

하와이에서의 어느 한 저녁 날, <이승만의 하와이 30년> 저자 이덕희 소장님의 특강을 듣게 되었다. 특강을 마무리하며 말씀하신 한마디. “여러분! 이승만을 알리려면 이승만 그 자체를 알리는데 힘쓰기보다 이승만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의 실력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너무 지당하신 말씀이었다. ‘리틀이승만’이 되는 것은 ‘이승만’이란 사람 자체를 닮기보다 그가 이렇게까지 밖에 할 수 없었던 동기를 닮아가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하나님 나라로, 자유민주공화국으로 세울 수밖에 없었던 신앙의 정체성을 물려받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유언으로 남기신 갈라디아서 5장 1절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한다. 우리가 오늘날 지켜야 하는 자유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천부적 인권, 즉 양도 불가능한 자유의 권리인 것이다. 

 

하와이에서 미국 본토로 넘어와 워싱턴DC의 국립 문서 보관소에서 미국 독립선언문을, 필라델피아에서 리버티벨을 볼 기회가 있었다. 1776년에 작성된 미국 독립선언문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당시 노예 문제로 미국은 시끌벅적했고 노예제를 묵인한 ‘반쪽 건국’은 1776의 정신을 온전히 반영할 수 없었다. 그때 에이브러햄 링컨이 공화당을 창당하며 등장한 것이다. 링컨 대통령은 “절반은 자유인, 절반은 노예로서는 미국이 지속될 수 없다”며 미국의 건국을 완성시키기 위해 남북전쟁이라는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노예 해방에 힘쓰게 된다. 

 

미국인들의 잠들었던 양심을 깨우던 자유의 상징, 리버티벨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그 시대가 떠올라 생각에 잠겼다.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 부여 받은 자유의 가치가 내 목숨보다 크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이승만과 링컨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았겠는가. 나 또한 휴전선 너머로 고통 받는 북한동포들을 해방시키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완성시키기 위해 내 목숨을 걸 만큼 자유라는 가치를 인정하고 있던가? 혹은 얼마만큼의 깊이로 나는 이 자유를 내다보고 있는 걸까.

 

국제정치에 탁월함이 있었던 이승만 대통령. 정치의 방향으로 개인의 실력을 쌓아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했던 그의 발자취를 걸어보며 나도 나의 실력을 쌓아보려 다짐한다. 대한민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어 내 삶의 터전으로 돌아온다. 한성감옥에서 시사관련 신문들과 잡지, 역사, 외교 등에 관한 책을 읽고 미국에서 유학하며 개인의 실력을 쌓던 청년 이승만. 그의 정신을 닮은 ‘리틀이승만’으로서 이제 대한민국을 바라본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나의 분야에서 실력을 다듬고 쌓아서 밀려났던 38선의 자리에 서길 원한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이승만 대통령의 희생으로 세워진 대한민국, 이제는 나의 희생으로, 우리의 희생으로 한반도가 하나님의 나라로, 자유민주공화국으로 세워지는 대한민국의 건국이 완성될 그 날을 기대함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훗날 우리의 발자취를 따라 한반도의 건국 역사를 살펴볼 우리 후손들이 생겨나길 소망한다.

 


글: 이진희 (1기 견미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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