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미의 이유
“아시다시피 우리는 자유가 생명 그 자체보다도 더 귀중함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외국 원수로는 최초로 뉴욕시 오픈카 퍼레이드에 초대된 이승만 대통령이 연설 중 한 말이다. 견미단의 필독서였던 <워싱턴의 겁쟁이들>에서 해당 내용을 읽으면서 나는 “자유”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견미단 활동의 취지와 메시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는 표현이 있듯이 우리는 사람들에게 자유가 생명만큼 소중하며 심지어 생명보다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자유를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할 때 이를 기꺼이 감당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1620년 정치적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에 도착한 필그림들은 예상치 못한 추위와 식량난, 그리고 질병으로 인해 출발한 인원수의 절반이 죽었지만, 도착 1년 후 영국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라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필그림을 기리는 National Monument To The Forefathers의 네 면에는 그들이 얻고자 했던 자유(Liberty), 그리고 그 자유를 보전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Education), 법(Law), 도덕(Morality)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신앙(Faith)은 이 모든 것의 근간이 믿음의 대상인 성경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신앙에 근거해서 목숨을 대가로 자유를 얻을 용의가 있었던 필그림의 정신은 미국 건국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지금 우리나라가 쓰러진 데서 일어나려 하고 쓰러진 데서 싹이 나게 하려고 한다면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 <독립정신>중에서.
러일 전쟁 중 자유를 잃어가는 조국과 백성을 보며 청년 이승만이 쓴 독립정신은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자유는 바로 신앙에 근거한 자유라고 결론 맺고 있다. 이렇듯 기독교 국교화가 아닌 기독교 입국이라는 건국정신의 일치성은 대한민국 국민이자 크리스천인 나에게 견미 활동의 필요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미국의 기독교 입국, 그리고 대한민국
신앙에 근거한 자유, 즉 기독교 입국은 결코 사변적이지 않다. 나는 이를 1776년 작성된 미국 독립선언문과 헌법, 그리고 그 정치제도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또한 미국 국장 초안이 이스라엘의 출애굽 장면이었다는 점과 미국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조지 워싱턴의 기도 장면, 그리고 워싱턴DC 곳곳에 새겨진 성경구절들을 통해서 국부들의 건국정신과 국가 지도 방향성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견미 활동은 미국 국부들의 기독교 입국 흔적을 확인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부 이승만이 이러한 미국 건국정신에 큰 영향을 받은 흔적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먼저 프린스턴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조평세 단장님의 강의를 통해 나는 이승만이 박사 과정을 거친 프린스턴 대학교는 독립선언문 작성자 중 유일한 목회자였던 위더스푼이 총장직을 맡았고, 미국 헌법의 아버지 제임스 매디슨을 배출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단장님께서는 이승만이 박사과정 수료 당시 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뱅주의 강연의 여파로 세워진 칼뱅 클럽에 소속되면서 칼뱅주의에 입각한 성경적 세계관을 접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하셨다. 나는 프린스턴에서 그 강의를 들으며 이승만이 그의 저서 ‘독립정신’에 기록한 기독교 입국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구체화해나가는 모습을 떠올렸고,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은 필라델피아 리틀씨어터가 있었다.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제1차 한인회의가 1919년 필라델피아 리틀씨어터에서 열렸다. 이승만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대한의 독립과 건국 의지를 국제 사회에 호소하기 위해 열게 된 한인회의를 재연한 다큐멘터리 음악극 ‘1919필라델피아’를 한국에서 두 번이나 봤던 나에게 리틀씨어터 방문은 특별한 감동이 있었다. 특별히 대회 내용 중 독립운동가 유일한이 읽은 ‘한국인의 목표와 열망’을 떠올리게 되면서 대한민국의 국부들이 정확히 미국의 건국정신을 따르고자 했음을 다시금 기억하게 됐다.
자유의 확립을 향해
이번 견미 활동에서는 미국 건국과 기독교 입국, 그 이상이 어떻게 적립되었는지만을 보지 않았다. 자유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횡단하고 전쟁을 치르며 법과 질서를 마련하는 그 역사만으로도 배울 점이 너무나 많았지만, 이번 견미단의 메시지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를 자명한 것으로 여긴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그들은 창조주로부터 특정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 1776년 독립선언문 중에서
미국 국부들이 적립한 신앙에 근거한 자유, 이 자유의 대상은 모든 사람(all men)이었다. 자유를 위해 세워진 나라 미국이었기에 노예제에 있어 지도자들 모두 무엇이 옳은지는 알았지만 당장 United States of America의 United를 지키기 위해서 그 누구도 이 필요한 결단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노예제 폐지를 이상으로만 간직하는 것은 신앙에 근거한 자유를 위해 세워진 나라 미국의 건국정신을 무효화 하는 모순적인 모습이었다. 그 가운데 링컨이 누군가는 해야 하는 남북전쟁이라는 이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나는 리버티벨을 견학하면서 미국이 노예제 폐지가 전사자만 60만 명에 달하는 끔찍한 대가를 치러서 얻은 것임에도 이를 건국정신의 회복이자 진정한 자유의 확립으로 기념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옳은 일을 향한 믿음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용기를 전수하고자 함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링컨 메모리얼을 방문하고 링컨의 2차 취임사를 읽어보며 위대한 결단 이면에 끔찍한 전쟁에 대한 고뇌와 믿음을 향한 도전을 떠올려 보며 옳은 길이라고 해서 평탄치만은 않을 수 있음을 명심했다.
나는 ‘남의 자유’를 위해 치러진 전쟁으로는 미국 남북전쟁이 인류 역사상 최초였다는 남신우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자연히 이승만 대통령과 한국전쟁을 떠올렸다. 나는 이번 견미 활동을 통해서 이승만 대통령이 일관되게 북진통일을 주장하고 미국을 상대로 그토록 휴전 협정을 반대한 것은 그가 전쟁광이어서가 아니라 남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의 위험성을 알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다. 또한 아직 울리지 않은 대한민국의 리버티벨을 울리는 일은 나를 포함해 이번 견학을 온 견미단원들에게 달려있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견미 활동을 통해 지난 역사의 과정을 보면서 책임을 다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역사의 끝을 보면서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다는 근거 있는 낙관을 가지게 됐다. 이번 견미 활동을 통해서 봤던 각각의 역사적 사건이 100년 이상 끊기지 않고 일어났다는 점을 보면서 선조들 또한 나와 같이 과거의 일들을 보며 큰 확신을 가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861년 링컨이 남의 자유를 위해 남북전쟁을 결단했고 결국 노예제 폐지를 이룬 역사적 사건은 1953년 끝까지 휴전을 반대하고 통일을 주장하는 이승만을 만들지 않았을까.
나는 하와이, 필라델피아, 워싱턴DC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비를 방문하면서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7-8)
누가 이 ‘남의 자유를 위하는 일’을 탁월히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은혜를 입고 은혜를 입은 줄 알며, 천국이라는 영원을 믿는 자야말로 그 일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들면서 통일을 향한 더 큰 책임감을 느꼈다.
겸손과 실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견미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기억에 남는 또 한 가지는 옳은 일을 향한 확신 뒤에 항상 도사리고 있는 인간 오류의 가능성이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 때 희생된 장병들을 기리는 USS 애리조나 기념관 (USS Arizona Memorial)을 방문하면서 나는 문득 기념관(memorial)을 통해서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그 답을 그날 견미단 말씀 묵상 본문을 통해서 얻었다.
"너의 생명의 피에 대해 나는 응보를 요구할 것이다. 각 짐승과 사람에 대해서 응보를 요구할 것이다. '그의 동료 인간으로부터 그 사람의 생명에 대해서' 응보를 요구할 것이다." (창9:5-6, ESV직역)
국가 권력으로 인한 처벌의 정당성은 개인의 원한과 복수가 아니라,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실현에 있다. 나는 성경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국가, 평화, 자유에 대한 관점, 그리고 이에 대한 기념은 얼핏 볼 때 기독교 입국과 결을 같이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뒤이은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창11:3-5)
나는 말씀을 읽으면서 바로 선 줄 알았지만 그것이 가장 망령된(godless) 모습일 수 있다는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향한 인정은 매사에 겸손이 요구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번 견미 활동을 통해서 인간 오류 가능성에 대해서 그 아무리 탁월한 정치제도와 구조를 마련하더라도 이를 고안한 존재도 여전히 인간이라는 사실과 전쟁을 결단하는 두 주체 모두 대의와 신의 이름을 내세우지만 하나는 멸망에 가증한 것이, 다른 하나는 정의와 공의가 이뤄지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에게 위대한 기준과 이를 향한 경외심을 요구함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는 실로 진지한 삶의 태도와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했다.
그러나 나는 견미 활동을 통해서 옳은 일인 것이 분명해진다면 이는 주저 없이 포기 없이 이뤄내야 하는 성취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배웠다. 정의를 위했지만 그 일이 이뤄지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질문에 청년 이승만은 그의 저서 독립정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사람마다 정의만 생각하고 목숨을 가볍게 여겨 한마음으로 나간다면, 또한 남들도 감동하여 일어나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뒤따라 나올 것이니, 그렇게 되면 어찌 일이 성사되지 못하겠는가. 설령 당장은 뒤따르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어찌 영원히 없을 리가 있겠는가. 이는 내가 죽더라도 일이 이뤄지지 못할까 염려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 <독립정신>중에서
나는 이승만의 이 글이 수많은 무덤을 방문한 이번 견미단을 통해서 이뤄졌다는 확신이 들었다. 겸손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대한 용기로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룰 것 또한 알게 됐다.
견미 활동을 마치며
견미 활동을 통해 보게 된 수많은 유적과 누렸던 특별한 만남, 섬김은 이제 책임이 되어서 우리에게 돌아왔다. 우리가 위대하다고 하는 일들에는 위대한 지도자뿐만 아니라 이를 지지하고 따르는 다수가 있었다. 신앙에 근거한 자유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질서 있는 자유라는 것과 그 자유의 한계가 어떠한 것인지를 견미단원 모두가 삶의 구석구석에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작은 요소부터 이뤄지는 말씀을 향한 경외는 동성혼과 낙태 합법화, 그리고 공산주의와 같은 무신론적 세계관 풍토를 바꾸며, 더 나아가 남을 자유케 하는 위대한 과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공부하고 힘쓸 모든 견미단원의 앞길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견미단 활동을 통해 내가 이 거룩한 경주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하며 이 모든 기회를 마련해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섬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글 : 김현철 (1기 견미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