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커크의 경고 : 도덕성이 없는 민주주의는 위험하다

  • 등록 2024.01.03 06:00:00
  • 조회수 532
크게보기

美 페더럴리스트, "커크가 살아있었다면 제국주의적 이념 택한 네오콘 세력 비판했을 것"

*편집자주

네오콘.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흔히 '광기에 서린 세력'으로 비춰지곤 한다. 이는 과거 미국의 부시 대통령 때부터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동안 미국적 가치, 즉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개입주의적'인 성격을 띄곤 했는데, 이들은 점점 세계주의적인 면모를 띄게 되었다. 이에 미국 보수언론 페더럴리스트(The Federalist)는 보수주의 철학자 러셀 커크(Russell Kirk)의 저서 '사려깊은 정치'(The Politics of Prudence)를 인용하며 그들을 비판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과거 1940년대, 사상가 피터 비에렉(Peter Viereck)이 그랬던 것처럼, 소수의 작가들과 사상가들은 '보수주의'(Conservative)라는 표현을 채택하고 사용해왔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해당 용어를 대중의 앞에 내어놓고 주목받게 만든 것은 1953년 러셀 커크가 '보수의 정신'(The Conservative Mind)을 출판한 이후였다.

 

미들테네시 주립대 정치학과의 마이클 페드리치(Michael Federici) 교수는 소련 붕괴와 냉전 종식 이후 1993년 처음 출판된 커크의 에세이 모음집 '사려깊은 정치'(The Politics of Prudence) 최신판에 대해 짧지만 통찰력있는 해설을 내놓았다. 해당 저서가 바로 냉전의 이념 투쟁에서 자유로워진 시대에 '보수주의'의 개념을 새롭게 제시하고자 시도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일단 페드리치 교수는 커크가 보수주의를 추상적이고 물화된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는 '인격의 성질'로 이해했다고 지적했다. 즉, 이데올로기를 행사하기보다는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는 21세기 영국의 보수주의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Roger Scruton)이 설명한 내용과 동일하다. 

 

이런 개념은 보수주의가 '이데올로기'로서 실패한 이유를 적절하게 설명한다. 애초부터 보수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커크가 그의 저서에서 해학적으로 설명했듯이, 보수주의를 이념화하려는 보수주의자들은 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근본부터 심각한 오류를 범한다. 그런데 보수주의자들이 '인격의 성질'과 '이데올로기의 거부'로 뭉친다면, 그 '성질'이란 무엇이며 '이데올로기의 거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커크가 정의하는 보수주의자의 인격과 성향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보수주의자는 스스로 의무, 규율, 그리고 희생이 요구되는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의 영역에 있음을 자각한다. 그리고 보수주의자는 온 우주가 초월적인 도덕적 질서에 지배된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는 사랑의 삶을 가능케하는 존재의 신비와 경이의 토대가 된다. 보수주의자들을 인도하는 사랑의 성향은 '감정이 매마르고 사랑이 없는 영역, 즉 생리적 욕망과 자기주장적 정념을 가진 모더니즘적 세계관과 대립한다.

 

이데올로기의 거부는 '지상낙원'과 '중앙집권화된 권력'이란 이중적 위협에 반대되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전체주의적인 충동을 불러온다. 저서 '사려깊은 정치'의 세 가지 챕터가 커크의 이러한 생각을 잘 보여준다.

 

 첫째, '이데올로기의 오류' 챕터에서는 이데올로기의 전망과 처참한 정책들에 대해 탐구한다. 커크는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보면 정치는 사회를 변화시키고 인간 본성을 바꾸기 위한 혁명적인 도구로 보인다고 설명한다. 이런 관점과 이데올로기적 정치구성은 보수주의자들이 거부하는 것이다. 

 

둘째, 'T. S. 엘리엇의 정치학'에 대한 짧지만 조명적인 성찰은 독자로서 하여금 보수주의의 성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엘리엇의 생애와 저서들을 살펴보면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혹은 어떤 다른 형태로든 '집중된 권력'에 대한 보수주의자의 불신을 드러낸다. 실천적 공리주의에 의한 윤리와 신학의 파괴는 무자비하고 비정한 정치학으로부터 나온 전제 정치를 초래했다.

 

우리는 종교와 윤리를 정치에서 제외시키라는 말을 반복해서 듣는다. 그러나 엘리엇이 주장한 것처럼 사회는 공통된 종교와 윤리적 관점에 의해 하나로 묶여있다. 기독신앙에 뿌리를 둔 친절과 연민의 윤리가 회복되지 않은 서구 사회는 '거대 권력에 대한 숭배' 아래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리고 주목할만한 셋째, 네오콘(Neocon)이라고 불리는 신보수주의자들에 대한 커크의 평가다. 종종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네오콘'이란 용어는 수십년에 걸쳐, 그 의미가 격렬하게 바뀌었기 때문에 오늘날 커크의 글은 시의적절하게 읽힌다. 그러나 커크가 보여주듯이, 원래 냉전시대의 신보수주의자들은 '보수주의적 스탠스'를 취해왔다.

 

신보수주의자들은 지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나라를 잠식해가는 관료주의에 맞서, 질서 있는 자유와 시민 사회의 편에 서왔다. 그들이 새로운 언론 및 잡지를 창설하고, 흥하면서 마침내 타임즈, 가디언 같은 신문사에 진출하는 것은 그들을 업신여기는 학계를 포함한 전 세계에 '보수주의자들이 매우 총명하고, 교양있으며, 온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즉, 리버럴 성향의 학계와 언론들에 의해 만들어진 '지루하고 저속한 바보들'이라는 프레임을 깨버린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많은 지식인, 문학가, 심지어 정부 관료들마저도 봉쇄를 풀고 소련과 화해를 추구하고 싶어하던 시기, 신보수주의자들은 세계 공산주의의 위험성을 이해했다. 그들은 오늘날 논쟁적인 수사에서 등장하는 사악하고 음흉한 '네오콘'의 존재가 아니었다.

 

커크는 신보수주의자들이 '제국주의', '세계주의', 그리고 '민주만능주의'(*각주 : 원문은 Democracism이지만 맥락상 민주주의이념이 아닌 민주만능주의로 번역함)의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고 있다는 의심을 품으면서 해당 챕터를 마무리했다. 1990년대에 보수주의에 관한 글을 쓰고 강의한 커크는 그들이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놀랍도록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오늘날 살아있었다면, 신보수주의자들이 제국주의적이고 세계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선호하고 보수주의를 포기했다는 이유로 '네오콘'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커크가 적은 저서의 본질을 검토하며 페드리치는 "정치나 권력이 아닌 '문화'가 보수주의자의 첫 관심사이다"라고 설명한다. 이 역시 스크루턴이 보수주의와 문화에 대한 옹호 논리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문화의 정의'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커크는 문화에 대해 '사회에서 작동하는 관습과 전통'이라고 정의한다. 문화는 사회 안에서 관습과 전통이 서로 소통하게 만드는 정서적이고 윤리적인 지혜다. 그들은 주로 우리에게 정서적이고 윤리적인 지혜를 가르치는 예술, 음악, 문학 (특히 시), 그리고 영적인 실천을 통해 소통한다.

 

그렇기에 보수주의자들은 위대한 사상가, 예술가, 작가들이 세대를 거쳐 발전시켜온 관계적 사랑의 지혜를 보존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한 이해는 범위가 넓고, 보수정치에 몸담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대열에 합류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커크가 전체적으로 시사하듯이, 보수주의는 정치적 구성에 있어 '이데올로기가 아니기 때문'에, 보수주의 이념은 실존하지 않는다.

 

'사려깊은 정치'의 최신판은 특히 '민주만능주의'의 시대에 표류한 보수주의 운동에 있어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커크는 아직 해당 이데올로기에 세뇌되지 않은 독자들에게 민주주의도 폭압적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민주주의에는 본질적으로 고귀한 것이 없으며, 그것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 아래의 고결한 시민들이다.

 

민주주의 쇠퇴의 잿더미 바깥에는 경외, 경이, 그리고 사랑에 기반한 인간사회를 재건하기 위한 윤리적, 신학적, 정서적 지혜의 회복과 함께 민주주의 부흥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21세기에 일어나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의 투쟁이다. 

 

데일리인사이트 정성민 기자 |

정성민 기자 jsm020704@gmail.com
Copyright @데일리인사이트 Corp. All rights reserved.

찬성 반대
찬성
1명
100%
반대
0명
0%

총 1명 참여

주소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 406-19 지하1층 등록번호: 부산 아00500 | 등록일 : 2023-05-30 | 발행인 : 손영광 | 편집인 : 손영광 | Copyright @데일리인사이트 Corp. All rights reserved.